brunch

내가 가진 유리 바닥, 누군가에게 유리천장.

[20VS80의 사회] 북리뷰

문제는 이러한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이 쥔 권력이다. 이들의 권력은 도시 형태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장악하며, 노동시장을 변형시킨다. 뿐만 아니라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PD, 교수, 논객, 연구자 등 대부분이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위20%은 이미 견고한 층이 되어있는 게 아닐까. 몇 년 전부터 소위 SKY 대학뿐 아니라 인 서울 대학 진학자들의 학력은 부모가 만들어준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부모의 재력 = 자녀의 학력'이라는 것. 이는 결국 이들의 스펙이 되고, 직업으로 이어진다.


"나의 지위는 나의 능력(학력, 두뇌, 노력) 덕분이므로, 마땅히 나의 것"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익 950점을 받으면 그것은 온전히 내 덕인가?

학창 시절에 쌓은 많은 스펙 덕분에 쟁취한 이른 취업은 역시 내가 잘해서인가. 조금 착하게(?) 생각해서, '운칠기삼'정도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말에 대해서 그동안 받아온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중상류층의 확신이라고 얘기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은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시장 실패'를 성공적으로 피한 셈이다.

"개새끼.."


함께 이 책을 읽던 한 친구는, 이 부분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부모가 건물주면 성공'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다만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가 이런 말을 한 게 씁쓸할 뿐.


계급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중상류층 부모가 자녀에게 쓸 돈이 더 많아서 때문만은 아니다. 학력, 태도, 거주지, 삶의 방식 등으로도 규정이 된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대개 양친이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부모 모두 교육 수준이 높고, 좋은 동네에 살며, 인근의 좋은 학교에 산다.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개발하고, 좋은 학위와 자격증을 딴다.

그렇게 그들은 '성인'이 되었을 즈음에 사회에서 말하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유리 바닥

중상류층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제공해준 특혜들을 저자는 "부모가 자녀에게 깔아준 '유리 바닥'"이라고 언급한다. 이들의 자녀들이 1퍼센트의 슈퍼리치는 되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도록 깔아주는 바닥이다. 그런데 이 바닥은 80의 사람들에게, 역으로 유리천장이 된다.


저자가 언급한 가장 좁히기 어려운 격차로는 '여행, 책, 가정교사'가 있었다. 자녀의 풍성한 경험을 위한 지출의 격차다. '가정교사'는 우리나라로 반영해봤을 때, '사교육'으로 치환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여행, 책, 사교육'. 이러한 격차를 통해서 첫 바닥이 형성되고, 여기에 다른 것들이 쌓이면서 점점 더 견고해진다.



기회 사재기

저자가 가장 비난한 부분.

중상류층 부모들이 자녀의 유리 바닥을 견고하게 해 주기 위해서 '기회''사재기'한다는 것. 자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기회'연줄, 자질, 기술 등을 발달시킬 기회를 말한다.

'기회 사재기'란 가치 있고 희소한 기회들이 반경쟁적인 방식으로 분배되는 것, 즉 분배가 개인의 성과와 관련 없는 요인들에 영향받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언급한 대표적인 '기회 사재기'에는

1) 배타적인 토지용도규제 / 2) 불공정한 대학 입학절차 / 3) 인턴 기회의 불공정한 분배가 있다.


'불공정한 대학 입학절차'가 언급된 까닭은 미국의 공공연한 '동문자녀우대'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는 절차이다.

이를 우리나라에 치환해본다면 특히 중소기업에서 더욱 빈번한 '기업 세습' 또는 '사장 자녀 우대'정도일까.




감상평


'능력주의사회는 공평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능력주의사회란 계층 사회를 공고히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그 능력도 각기 속한 계층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기에. (가끔 있는 예외는 정말 소수일 뿐) 하지만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여기에 관해서는 정부의 기본소득 논의와, 취약계층 및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확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 담론에도 중상류층이 영향을 미쳐서 80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언론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목소리에 확성기를 대주는 일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우리 집보다 더 부유한 이들만을 부러워하며 다른 이들에게는 일부러라도 더 무관심한 건 아닐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