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을 위한 시간은 사라져야 한다.

이동을 향한 모순된 기술의 진보

by 김수안

저번 글에서 자동차 발전의 역사가 자율주행을 향한 역사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동차 이전의 먼 과거에도 자율주행을 향한 욕망은 꾸준히 있어왔다. 자율주행을 운전 없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누군가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 자율주행이다. 그리고 쉽게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는 존재했다. 가마, 인력거, 마부, 운전기사 등. 이동의 수단만 다를 뿐 전부 자율 주행을 향한 시도와 같다. 왜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자율주행을 위해 애를 썼을까?

고구려 벽화고분.PNG 따지고 보면 자율 주행이 맞다. 출처: 고구려 벽화 고분

말을 타고 경주를 한다거나,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가는 상황을 제외하면 이동은 대부분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우리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가는 것이지,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연인을 만나지 않는다. 인간에게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수단을 위한 시간을 최소화하고, 목적을 위한 시간을 최대화하고 싶은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렇지만 이동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이동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수단이라면, (1) 이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거나, (2) 이동하는 경험을 개선하면 된다. 스포츠카를 타고 즐겁게 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보편적인 니즈는 이동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먼저 사람들은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했다. 답은 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다. 빨리 도착하면, 더 오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점점 더 빠르게 이동하는 기계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이 있다. 기계를 통제하기 위해 팔과 다리를 구속당했다. 더 빨라질수록 더 위험해 지기 때문에, 더 많은 주의를 요하게 되었고, 인지적인 구속 또한 일어났다.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줄였지만, 이동하는 시간 중에는 온전히 이동에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목적의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 1번의 목적(이동하는 시간 줄이기)을 충족한 자동차는 이제 자율주행을 통해서 2번을 충족시키려 한다. 이동하는 과정도 즐겁게 만들려는 것이다.

대중교통은 이와는 반대의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수의 사람을 이동시키는 덕분에, 대중교통은 일찍부터 자율주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승객들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편하게 스마트폰을 통해 페이스북을 하고, 영상을 감상한다. 대신,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일이 생기고, 다수를 수송하기 위해서 정류장마다 멈춤이 필요하다. 이동하는 경험의 개선은 충족되었지만, 시간을 줄이지는 못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요 근래 광역버스나 급행 노선 등이 확대되고 있다. 이동하는 시간까지 줄이려는 노력이다.



Flickr_-_World_Economic_Forum_-_Jack_Ma_Yun_-_Annual_Meeting_of_the_New_Champions_Tianjin_2008.jpg 알리바바 마윈 회장, 출처: World Economic Forum

결국 자율주행은 이동을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겨난 욕망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 자체를 줄이거나, 이동만을 위한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진보의 끝에 이동이라는 본질은 아주 작은 부분만 자리할 것 같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이 전화가 아닌 것처럼 미래 자동차는 80퍼센트 이상의 기능이 교통과 무관할 것”이라 말했다. 감탄하게 만드는 통찰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더 이상 자동차 제조 회사가 아닌, 이동성 회사라고 말을 한다. 이동의 축소 시대에 이동성을 추구한다는 점이 일견 모순되어 보인다. 여러 회사들이 정의하는 이동성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80%의 기능이 지금과 달라지는 자동차는 어떤 방향의 변화를 추구해야 할까? ‘움직이는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정의 내려질 수 있을까? 각 회사들의 답변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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