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한 영혼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10,41-42)
마르타는 ‘해야 할 나’에 붙들리고,
마리아는 ‘이미 괜찮은 나’로 머뭅니다.
우리는 모두 마르타와 마리아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지금 여기에 머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타는 '무언가를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라고 믿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직장인,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를 위한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어머니, 좋은 성적을 받아야 부모님께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
그들은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해야만 하는 것'에 묶여 있습니다. 존재 자체가 아닌 성과와 역할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삶의 방식입니다.
마리아는 '이미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냥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바쁜 하루 중에도 잠깐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아이가 실수해도 "괜찮다"라고 안아주는 부모, 성과보다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동료를 대하는 직장인...
그들은 예수님의 발치에 자기를 내려놓고 머무는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고, 이미 사랑받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의 분주함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녀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분이 마르타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시는 부드러운 음성은, 사랑하는 사람이 걱정에 휩싸인 연인을 다독이는 목소리와 같습니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애틋함과 연민이 담긴 부르심입니다.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 "네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야. 다만 네가 존재 자체로 이미 사랑받는다는 걸 잊고 있구나."
존재영성을 만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름을 불러주심은 곧 "너는 충분히 소중하다"는 메시지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존재의 평안을 찾으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좋은 몫"은 단순히 기도 시간이나 교회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존재에 두는 선택입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도, 10분간 조용히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
아이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아이가 말을 걸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온전히 귀 기울이는 것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도, 하루에 몇 분이라도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
존재영성은 삶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한가운데에서 존재를 우선순위로 삼는 태도입니다.
마르타의 손길도, 마리아의 침묵도 모두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 위에 존재에 대한 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존재는 성취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은 말씀 앞에 앉는 그 자리,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열립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계신 그리스도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18)』
이 그림은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가 젊은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성서 속 이야기와 일상의 장면이 하나로 어우러진 독특한 구성이 특징입니다.
1. 앞쪽 장면: 평범한 주방의 풍경
화면 전면에는 마치 우리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주방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마늘을 찧고 있으며, 옆의 나이든 여인은 무언가를 지적하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계란, 마늘 껍질, 말린 고추, 생선, 그리고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이 중 생선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기호입니다.
이 여성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도 큽니다.
노파는 여성을 나무라는 듯 보일 수도 있고, 혹은 뒷편 장면을 가리키며 “저 장면을 보라”고 관람자에게 말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2. 오른쪽 상단 장면: 성경 속 이야기
그림의 오른쪽 상단 ‘창’처럼 보이는 부분에는 루카 복음 10장 38–42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마르타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10, 41–42)
이 장면은 전통적으로 ‘행동’보다 ‘묵상과 말씀을 듣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3. 두 장면의 관계와 해석의 다양성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두 장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뒷배경은 거울에 비친 장면일 수도 있고, 벽에 걸린 그림일 수도 있으며, 혹은 두 시간이 나란히 공존하는 상징적 창문일 수도 있습니다.
앞쪽의 여인들이 입고 있는 옷은 17세기 스페인의 복장으로, 성경의 시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는 벨라스케스가 성서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 끌어온 의도적 연출일 수 있습니다. 노파의 손짓은 "이 두 세계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손가락처럼 보입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통해 “일상의 자리에서 복음은 어떻게 살아나는가”를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