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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종착역

by veca


나는 그저 한 발을 내디뎠을 뿐 어디로 갈지 모른다. 왜 아직도 제자리냐고 어서 종착역을 정하고 기차표를 사라고 종용해도 난 매표소 앞에서 서성거리고 울상이 될 뿐이다. 한 시간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그렇게 표를 살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일 것이다.


그 자리에서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들이 쭈르륵 줄을 서서 매표원에게 또박또박 자신의 종착역을 말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서 말이다


갑자기 위가 조여오는 것이 느껴진다. 스트레스성 위염 증세다. 이렇게 글쓰기를 위한 공간으로 뛰어들어 보아도 뭘 적을지 몰라 허둥대던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게 힘들다. 나의 문제는 쓰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여전히 쓰고 난 후 목덜미가 땅긴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나의 글 토대도 탄탄하지 않고 경험으로 쌓아온 이력도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쭈뼛쭈뼛 이 공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랍다. 쓰면서 겪는 스트레스와 쓰고 난 후의 가벼운 만족감을 어느 정도는 즐기게 된 이런 용감무쌍 철면피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고무적인 일임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의 종착역은 《존재》의 증명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가 종착역인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뭔가 미진한 채로 그저 기차에 타고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루하루 보태고 있을 뿐이다. 처음 왜 쓰느냐 무엇을 위해 쓰는냐는 질문의 글엔 죽기 전 내 이름의 책을 갖고 싶다고도 쓴 적이 있다. <스토너>를 읽고 더욱 강하게 그런 꿈을 갖고 싶었다. 그 부분은 스토너가 죽음을 느끼며 갖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스토너 p391, 392-존 윌리엄스



책을 필사하는 동안 다시 전율이 일었다. 책의 끝까지 옮겼다가 주인공은 귀신이라고 소리치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생각나서 backspace를 꾹 오래 눌렀다.


이런 전율의 마지막을 꿈꾸는 것도 지금은 종착역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진정한 용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난 종착역이 없는 프리 패스권을 끊었고 일단 올라탔다. 이제 겨우 출발한 기차가 어떤 역을 지나쳐 갈 것이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글쓰기>를 끊임없이 하면서 나의 토대를 더 단단히 하는 작업을 바지런히 할 것이다.


그러다 홀연히 내릴 역에서 새로운 뭔가를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어디든 내리지 않고 종착역까지 갈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조차 내리지 않고 회차하여 돌아온다 해도 처음 출발한 그 역은 아닐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뭔가 달라진 내가 다른 <글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바라는 종착역은 결국 다름역이다. 지금보다 더 성숙된, 그리고 자신의 다음 종착역을 선명하게 알고 있을 다름역에서 내릴 것이다. 그곳에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누구든 반가운 얼굴이 환영 피켓을 들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마침내 스토너 같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 한다면...아...


스토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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