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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Mar 10. 2022

슬기로운 격리생활 1, 2일 차

오미크론이라니!

1일 차 (3월 8일)


ㅡ새벽 2시

아이가 열이 난다. 어제 같은 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병원에서 받은 신속항원검사는 음성이었다. 책을 읽다가 무심히 그냥 자는 아이 이마를 쓰다듬었는데 전해오는 감이 좋지 않았다. 체온계가 필요 없는 엄마 감이다.


체온계를 꺼내 재어보니 37.2. 37.4 점점 오른다.

심상치 않은 밤이 예상된다.

타이레놀 반 알을 먹이고 잠옷을 조금 가벼운 걸로 갈아입혔다.

코로나라면 어쩌지? 5학년인 아이는 백신도 맞지 않아서 고생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불길한 예감...

좀 재우고 다시 검사를 해봐야겠다.


ㅡ아침 7시

타이레놀 반 알을 먹고 잠든 아이는 두 시간쯤 지난 이후 열은 떨어졌는데 아침이 되니 또 미열이 있다. 찬인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일단 다시 한번 자가 키트를 해보고 음성이라도 오늘은 학교를 가지 말자고 아이를 타일렀다. 등교 시간 이전에 형이 학교를 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빠에게 검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15분이 지나도 한 줄이었다. 큰아이는 후다닥 밥을 먹고 동생이라도 pcr은 아직 안 했으니 학교를 가겠다고 하고는 갔다. 감기라 해도 약은 받아와야 하고 검사도 병원 가서 다시 하자 하고 얼른 밥을 먹였다.


ㅡ9시 10분

어제 갔던 홈플러스 병원은 10시가 안 돼서 문을 열지 않았다. 운전해서 가면서 검색을 하다가 차를 돌려 근처 항원 검사를 하는 병원인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런데 아이가 심상치 않다. 자꾸 눕고 싶다면서 차 뒷자리에서도 누워있었다. 둘째가 말이 없고 누울 땐 빨간불이다. 절대 직진하면 안 되는 불이다. 다급하게 병원에 가면서 검사 키트를 다시 들여다보는데 희미한 두 줄이 생겼다. 희미한데 이게 뭘까 불안했다. 병원 가서도 불안해서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양성인 것 같다고 했다. 진료를 받지 않고 아이는 차에 다시 앉혀두고 나 혼자 이비인후과로 갔다. 해열제가 급했다. 만약 pcr 검사를 하고 양성을 받으면 병원비와 약 값을 보조해 준다고 했지만 그러면 하루 동안 아이에게 타이레놀밖에 먹이질 못한다. 몇천 원도 아쉽지만 얼른 열을 내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의사 선생님을 뵙고 양성 의뢰서와 약을 일주일 치받아왔다. 잘못된 의료체계라고 생각됐다.

수업을 하는 큰아이에게 바로 집으로 오라고 문자를 했다. 학교 가기 전 문자를 할지 모르니 수시로 확인을 하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주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어쩔 수 없다. 곧 집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작은 아이가 확진이면 우리 세 식구는 pcr 검사를 하러 내일 보건소에 가야 한다.


ㅡ9시 45분.

보건소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보니 pcr검사 줄이 백 미터도 더 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한 시간이나 서있기는 힘들어 보여서 차에서 쉬게 하고 혼자 줄을 섰다.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보니 내 핸드폰으로 비대면 문진서 작성을 하고 줄 서있다가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아이가 아파도 빨리해줄 순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있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있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은 봉사자들이 먼저 검사받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줄을 서있다가 아이를 데려올 수 없어서 남편에게 오라고 했다. 거의 순서가 되었을 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검사를 받았다. 아이는 차에서 좀 쉬니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같이 서있다가 안전 검사 부스에 혼자 들어가는데 눈물이 왈칵 나서 이를 꽉 물었다. 이런 곳에서 아직 울면 안 된다. 내 코끝에 몰려드는 뭉게구름을 꾹 참고 검사하고 뛰어오는 아이를 꼭 붙잡고 주차장으로 갔다.


ㅡ오후 6시

아직도 37.6도 해열제를 먹어도 훅 떨어지지 않으니 그냥 지켜봐야 하는 건지ᆢ어릴 땐 열이 심하면 계열 다른 해열제를 두 시간마다 번갈아 먹이곤 했는데 여분의 약도 없다. 병원은 전화를 받지 않고 약국에 전화하니 부루펜 계열 약을 더 먹여보라고 해서 남편이 사러 나갔다.

아이는 자다 잠깐 책을 보다가 다시 자다가를 반복하더니 지금 bts 노래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으며 설민석의 삼국지를 보고 있다. 새로 출간된 6권을 구입한 게 토요일인데, 월요일엔 온다던 예스 책은 이렇게 가끔 약속을 안 지키고 오지 않았다. 집에 있는 5권까지 방에 넣어줬더니 계속 새 책이 왔는지 묻는다. 확인 전화를 해봐야겠다.


코로나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카도 걸리고 지인도 걸리더니 덜컥 우리 아이에게도 왔다. 곧 내게도 올 듯하다. 증상만 좀 가벼워져 떠나버리길 기도한다.



2일 차  (3월 9일)


ㅡ오전 8시 반

방에서 혼자 밥을 먹던 둘째는 살짝 문을 열고는 시크하게 말했다.

"나 양성이래! 메시지 왔어!"

손에 핸드폰을 들고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나쁜 소식을 던질 때 아이의 표정이 있다. 초연한 그런 표정이다. 단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거나 하고픈 일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한껏 쿨한 표정으로 말을 툭 던진다. 표정은 '뭐 아무렇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큰 눈동자 속의 눈빛은 흔들리며 깊은 청록빛을 띤다. 좀 더 어릴 때 펑펑 울면서 속상해서 눈물을 뚝뚝 흘릴 때도 있었다. 시험을 못 보고 집에 돌아와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고 울다가 잠들곤 했다. 어느새 아이가 자라면서 삶의 방향을 바꾼 건지, 포장하는 법을 배워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았을 텐데 안아주지 못했다.


pcr을 받으러 가는 길에 봄을 만났다.

ㅡ오전 10시 40분

질병관리청에서 동거인 신상을 입력하라고 링크가 와서 모두 입력하고 pcr을 하러 보건소로 갔다. 남편과 나는 걸어가기로 하고 가는데 큰아이는 뒤따라오겠다고 하고 나중에 왔다. 걸어가고 있는 도중에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둘째랑 통화를 했고 검사받으러 갔다는 얘기를 전해 받았다고 하셨다. 안정되고 따뜻한 음성이셨다. 바로 pcr을 받을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주겠다고 하셨고, 둘째 증상이 심해지면 119에 연락하고, 자택에서 치료법을 알려주는 보건소 내 전화번호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도착해 보니 어제보다도 줄이 더 길었다. 50미터쯤...

몸이 무겁고 힘들어서 몇 번을 주저앉아 대기했는데, 어린아이 둘이 있는 가족이 슬기롭게도 접는 간이 의자를 가져와서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니 부러웠다.


어제는 우리 아이가 혼자 검사 부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뭉클했는데 오늘은 어린아이들이 검사를 받는 걸 보고 눈물이 났다. 4번까지 검사하는 곳이 있는데 두 군데는 부스였고 야외의 두 군데는 칸막이만 설치해둔 곳이었다. 마지막 4번은 어린아이만 검사했다.


한 시간을 대기하고 겨우 검사 키트를 받아 들고 서있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칸막이가 쳐져 있지만 엄마의 신발과 아이 신발, 그리고 검사하시는 분의 가운이 보였다. 아이는 거세게 거부하며 울고 있었고 엄마는 달래다가 급기야 소리를 질러댔다. 가녀린 몸매의 검사자분은 당황하신 모습이 역력했다. 시도했지만 억지로 아이에게 다가가다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하지 못하셨다. 세 사람 모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또 코끝이 몽글몽글해졌다.


지금 우린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까. 왜 이런 일을 경험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 우리 아이들이 그나마 좀 커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 안도감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더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우리 아이가 커서 미안하다. 내가 안도감을 가져 미안하다. 그런 느낌...


우리 큰아들은 정말 겁이 많았다. 많은 예방접종을 할 때마다 난 미리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편이 없을 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더 어릴 때는 힘으로 잡고 있었는데 네다섯 살만 되어도 내가 힘으로 아이를 제압하는 게 쉽지 않았고 달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남자아이는 아이라도 힘으로 제압하기 무척 힘들다. 바닥에 엎드리려는 아이를 질질 끌고 가기도 했고, 유치원 친구들이랑 같이 주사 맞으러 간다고 갔는데 우리 큰아이만 카시트를 붙잡고 울면서 내리질 않아서 그날 못 맞은 적도 있었다.

일곱 살에는 기침이 너무 심해 종합병원에서 피를 뽑고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피 뽑는 곳에서 나를 꼭 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겨우겨우 주삿바늘을 꽂았는데도 긴장을 해서 그런지 피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달래서 오라고 했고 난 눈물이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다. 달래고 어르고 한 시간 만에 겨우겨우 피를 뽑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대여섯 살의 파마 머리 남자아이는 엄마에게 혼나면서 결국 끝내고 나왔고 엄마는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까 봐 또 아이를 혼냈다. 아이도 엄마도 모두 다 정말 이해가 되었다. 그 시간은 반드시 치르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검사는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시간일까.


ㅡ오후 10시 반

열이 떨어지니 계속 컴퓨터만 하고 있는 아이에게 사식(?)을 넣어주며 숙제도, 공부도 좀 하라고 했다. 아이는 부리나케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컴퓨터에 심취해 있었다. 하루에 오백 번은 와서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조용히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뭔가에 빠져 있다.

괜찮을까?


걱정이 되어서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들어가 약을 먹었는지도 체크하고 불편한 곳을 물어봤다. 결국 아이는 마우스의 건전지가 닳으니 컴퓨터를 껐다. 와이 책을 넣어달라고 해서 몇 권을 넣어줬는데 슬쩍 문을 열고 나를 부른다.

마스크를 쓰고 문 앞으로 가니 자기가 온종일 만든 유니티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며 두 가지 게임을 보여줬다. 2048이라는 게임은 신기해 보였는데 그걸 얼마나 보여주고 설명하고 싶었는지 느껴졌다. 뭘 해도 와서 이야기를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인데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안쓰러웠다. 되도록 성실히 들어주고 정말 멋지다고 하니 "잘했지?" 하며 칭찬을 해달라고 했다. 내일 엄마도 양성이면 함께 해볼 수 있다고 얘기해 주니 문을 닫는다. 조용해져서 잠시 후 슬쩍 문을 열었다. 아이는 불을 켜 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었다.


우리 막내. 가서 꼭 안고 손을 잡아주고 싶다.




잔인한 4월이 아닌 3월에 봄은 왔다.

아침이 되면 향방을 알 수 없는 두 가지 소식이 전해진다. 대선과 우리 세 식구의 검사 결과는 과연 어떤 결과로 내 눈앞에 펼쳐질까?

이 밤이 두렵다.

보건소 가는 길에 있는 동네 화원엔 봄이 그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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