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a Apr 01. 2024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알바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다. 차를 가져가지 않고 30분 거리의 사무실로 걸어서 갔다. 돌아갈 땐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마음이 심란해서 천천히 걸었다. 터벅터벅 발이 무거워서 저절로 걸음이 느려지고 뉘엿이 해가 지고 있는 주위에는 점점 어둠이 다가온다.

개나리를 찍으려고 했는데 천천히라는 바닥의 글씨가 찍혔다. 우린 너무 빨리 가려다가 이쁜 꽃을 놓치고, 욕심부려 달리다가 사고를 맞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 퇴고해서 올린 글에도 썼던 문장이 무거운 발걸음에 매달려 발뒤꿈치에 치인다. 요즘 누가 질문을 해도 대답을 못한다. 어찌해야 한다고 어찌 될 거라고 말하지 못하며 빙빙 에둘러 핵심을 피해 간다. 나이 드나 보다. 무섭게 드나 보다.


7살 남자아이가 늘 산만하고 말이 많아서 센터에 들어서면 조용히 앉아있던 아이들의 엉덩이도 가볍게 소란스러워진다. 오늘도 역시 그러했는데 그러려니 하고 먼저 다른 친구들을 봐주었다. 관심을 학습지로 돌려보려고 해도 오늘 유난히 고집을 부리고 설득이 되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고 그 친구만 남았다. 예정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다음에 더 하자고 타이르고 보내려고 해도 안된다고 책상에 앉아서 계속 짜증을 부리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아이의 학습지를 덮고 말했다.

"ㅇㅇ야, 선생님이 잠깐 안아줄게. 이리 와봐!"

ㅇㅇ은 순순히 내 무릎에 앉았다.

 "ㅇㅇ 오늘 힘들지? 괜찮아. 괜찮아."

아이가 내 어깨 위에 고개를 더 가까이 붙였다.

"힘들 수도 있어. 당연한 거야. 괜찮아. 힘들거야. 영어학원도 더 늘어서 힘들지 요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ㅇㅇ 지금 졸리지?"

ㅇㅇ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더 꼬옥 껴안고 등을 계속 토닥였다.

"괜찮으니까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고 졸릴 땐 졸리다고 말해. 졸리면 누구나 짜증이 나거든. 선생님 아들도 그랬어. 그런데 절대로 ㅇㅇ를 아프게 하면 안 돼. 그건 절대로 안 되는 거야. 이 세상에서 제일 제일 소중한 건 ㅇㅇ거든. 다 해도 괜찮은데 ㅇㅇ를 아프게 하지 마. ㅇㅇ도 안되고 누구라도 ㅇㅇ를 아프게 해선 안돼.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다시 토닥이며 한동안 안고 있는데 토실한 아이의 허벅지가 다리를 누르며 허리에 통증이 왔다. 하지만 마음이 더 아파서 참을만했다.


내게서 떨어진 아이의 볼에 동그란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있었다. 티슈로 볼을 닦아주고 코를 풀게 하니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끝까지 글씨도 정성껏 눌러쓰면서 학습지를 마쳤다. 늘 자상하신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셨다. 오늘도 오신 아버님께 아이가 힘든 시간은 절대로 학습을 강행하시지 말고 많이 안아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ㅇㅇ는 잘할 아이라고 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해드렸다. 깊이 생각하시며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시는 190센티가 넘는 아버지의 모습에 안심이 됐다.








이렇게 금방 깜깜해질 걸 알지 못하면서 우린 얼마나 많은 무리수를 두는지 모른다. 오늘은 남의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내 아이들을 안아주어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안아주고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어야겠다고 살살 다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격리생활 1, 2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