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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Oct 13. 2020

생리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그런데 생리대 쓰레기는 어떡하나


 가임기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꼭 생리가 찾아온다. '한 번'이라고 쓰고 나니 왠지 눈 딱 감으면 지나갈법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그럴까?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생리 시작일 일주일 전부터 슬금슬금 '곧 당신의 생리가 시작됩니다!'라며 두통과 요통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 초반 3일 정도는 자궁이 쏟아질 것 같은 복통과 아직 안 간 두통과 요통이 겹쳐 진통제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은 후 내 자궁벽이 꽤 두껍게 부풀어 오르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로 인해 생리량도 많고 기간도 길다 보니 7~9일 정도 생리대를 착용한다. 생리 시작일 2주 후 꼬박꼬박 찾아오는 배란통도 빼놓을 수 없지. 못해도 한 달의 반 정도는 생리라는 현상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물론 28일을 주기로 반드시 생리를 치른다는 것이 내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뜻이라며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통증과 찝찝함, 짜증스러움이 몰아치는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노라면 '아~ 성실한 나의 몸, 감사합니다'라고 마냥 기쁘게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생리대의 배신


2017년, 생리대 파동이 터졌다. 시작은 특정 생리대에 대한 의혹이었지만, 곧 모든 생리대가 그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수많은 광고들이 일러준 대로 '순면'이라고 적혀있으면 좋은 생리대인 줄로만 알았다. 일회용 순면 생리대 속의 흡수체나 접착제가 화학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는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당수의 생리대에서 인체에 유해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 기사들 아래에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서부터 생리 불순이 시작됐어요'. '생리통이 너무 심해졌어요', '생리량이 줄었어요'라고 달린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혹시 내 생리통도?'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생리대의 뽀송함에 길들여져 생리 기간이 아닐 때에도 일회용 팬티라이너를 꼭 착용했기 때문에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SBS에서 '바디 버든(인체에 누적된 유해 화학물질의 총량)'을 주제로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그 당시 자주 회자됐다. 플라스틱이나 세제, 화장품, 가공식품, 생리대 등의 화학물질을 배제하고 8주 동안 살아보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상당수가 특히 자궁 관련 질환에서의 호전을 보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점막에는 혈관이 많고 약물 침투율도 일반 피부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생식기관과 밀접한 상태로 사용되는 생리대를 꾸준히 쓰는 것이 여성 생식기 질환의 발병률 증가세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생리대 파동 이후 식약처는 생리대의 유해성에 대해 '인체에 유해한 수준 아님'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내 주변에만 해도 면 생리대나 유기농 생리대로 바꾼 후 극심한 생리통에서 해방됐다는 후기들이 생생했다. 일회용 생리대를 썼을 때는 아팠고, 안 써보니 안 아프다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일회용 생리대가 '무해한 수준'이라는 기준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무해하다'는 결론 앞에서 우리의 호소는 마치 꾀병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 여성 2만 명을 대상으로 생리대 사용 실태와 관련 증상 등을 파악하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지난 2월부터 여성 3,000명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2차 조사를 진행 중이다. 내년 3~4월 내로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생리대가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서 마음에 걸렸던 이유들이 더 있다. 우선, 생리 기간마다 엄청나게 발생하는 쓰레기다. 생리혈이 한 방울씩 꾸준히 나오는 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하게 울컥울컥 쏟아지는 것이다 보니 생리대는 많은 양을 빠르게 흡수하기 위해 대체로 부피가 크다. 그것을 서너 시간 주기로 갈아주는데, 나는 버릴 때도 포장지로 한번 감싼 그것을 휴지로 다시 꽁꽁 말아서 버린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나 알바 장소, 직장에서 마저도 '여자들이 생리대를 대충 버려서 여자 화장실이 더럽다'는 잔소리를 하도 들어왔기에 생리대 쓰레기가 더럽게 보일까 봐 강박적으로 감싸 왔다. 내가 평생 생리대를 버리면서 발생시켜온 쓰레기를 모두 합친다면... 머릿속에서 잠시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만다. 다른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줄이자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환경 파괴범이 된 기분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생리대는 동물실험을 거친다. 인간의 몸에 유해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 토끼나 원숭이의 생식기에 반복적으로 제품을 삽입한 뒤 체내 독소 반응을 검사한다는 것이다. 내 생리혈을 처리하는 수단을 당장 바꿔야 했다. 사실 너무 늦게서야 관심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일회용 생리대를 써왔다는 이유로 내 생리가 내 몸과 동물, 환경에 죄를 짓고 있었다.



내 피의 안식처를 찾아서...


 생리를 시작한 지 15년 여 만에 생리대 유목민이 된 나는 (그전까지는 생리대 값도 만만치 않다 보니 마트 등에서 1+1 행사하는 제품을 대부분 골랐다) 세 가지 기로에 놓였다.

1. 면 생리대
2. 유기농 일회용 생리대
3. 생리컵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것이 면 생리대다. 쓰레기도 발생하지 않고, 특히 생리통이 현격하게 완화됐다는 주변 얘기나 후기를 많이 접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수십 개의 생리대를 쓰는 나로서는 면 생리대를 과감히 선택해 그만큼의 빨래를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이런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럽고 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빨래가 더 싫었다. 그래서 생리컵과 유기농 일회용 생리대를 병행해서 조금이라도 생리대 쓰레기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궁 입구에 고무 재질로 된 컵을 넣어서 생리혈을 받는다는 발상이 조금 공포스러웠지만 온갖 유튜브를 섭렵하고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거친 뒤 야심 차게 생리컵에 도전했다.



 하지만 생리컵을 넣는 것부터 전쟁이었다. 생리컵은 탐폰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작은 물컵 정도의 크기다. 처음 배송받은 생리컵을 손에 들고 바라봤을 때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보세요'라는 미션을 받은 기분이었다. 빳빳한 생리컵을 억지로 작게 접어서 몸속에 넣어야 하는데 잘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목적지까지 채 들어가기 전에 자꾸 '팡' 펴져서 예민한 뱃속이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뺄 때는 또 어떻고. 몸 안 쪽에 (대충 코어쯤이라고 해두자) 힘을 주어 컵을 몸 바깥으로 밀어낸 다음 컵의 꼬리를 손으로 잡아서 빼야 하는데, 그 와중에 기르지도 않는 짧은 손톱으로 연한 살을 꼬집게 되면 온갖 욕이 튀어나왔다. 생리컵을 시도해보는 동안 욕이 정말 많이 늘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잘 때마다 생리혈이 새서 몇 번을 자다 깨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 옆에 꼭 붙어서 자는 우리 집 강아지마저 내 생리 기간마다 수면 장애가 올 지경이었다. 삼 개월간의 시도, 세 번째 브랜드마저 실패하고서 생리컵은 포기했다. 언젠가 다시 시도해볼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쳐다도 보고 싶지 않다. 잘 적응한 사람들은 엄청난 해방감을 경험한다는데 나에게 생리컵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거금 출혈만을 남겼다.



 최후의 수단으로 철석같이 믿고 쓰던 유기농 생리대마저 최근 논란이 있었다. 해외 생리대를 수입, 판매해오던 국내 업체에서 생리대에 쓰인 접착제가 화학 성분임에도 자연 성분이라고 허위 기재 및 광고를 해왔다는 것이다. 해당 회사의 창업자까지 나서서 여전히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3년 전 호되게 놀랐던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면 생리대, 생리컵도 시끌시끌하기는 마찬가지다. 생리대와 마찬가지 수준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더라, 생리컵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더라, 면 생리대에서 총휘발성화합물질(TVOC)가 가장 많이 검출됐다더라, 빨면 괜찮다더라, 세탁 기준이 다 다르더라 등 정답 없는 의혹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확신이 없는 정답지를 들고 있는 소비자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할 수밖에 없다.



조금씩 세워가는 기준


 아직도 혼란스럽고 모르겠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생리 기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조금씩 마련되어가는 중이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빈번하게 교체하지는 않는 팬티라이너는 면 생리대 제품으로 바꿨다. 잘 때는 아주 두껍고 기저귀 같은 일회용 생리대를 착용해왔는데 월경 팬티에 적응해보기로 했다. 하루에 한 개 정도 발생하는 손빨래는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도 여전히 안 쓸 수는 없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인증, 비건 인증, 생분해 인증은 필수 요소다. 최근에는 100일 정도 안에 퇴비로 생분해될 수 있는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어서 생분해성 제품을 퇴비화 할 수 있는 설비와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겸연쩍게도 여전히 모두 면 생리대로 바꿔서 많은 빨래를 감당하며 살 계획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빨래할 시간을 아껴서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면 일회용 생리대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와 건강에 덜 해로운 일회용 생리대 역시 우리 곁에 존재할 필요가 있기는 할 것이다. 오랜 시간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해서 내 몸과 환경에 미안했던 만큼, 포기하지 않고 더 완벽한 일회용 생리대를 위해 목소리 내고 찾아가는 여정 또한 계속해나가고 싶다. 내 생리가 더 이상 죄책감을 안겨주지 않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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