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vecoming Oct 16. 2020

비건 화장품인데, 동물실험을 한다고?

'동물실험 안 하는 화장품' 찾다가 폭삭 늙을 뻔...

 사고 싶은 화장품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보통은 검색창에 브랜드 이름을 넣고 후기를 찾아보느라 바쁠 것이다. 발림성은 좋은 지, 향은 괜찮은 지, 지속력은 어떻고 촉촉함은 어떤지 등을 꼼꼼히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먼저 메일창을 켠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에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기 위해서다.



1. 모든 제품이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건가요? 관련 회사나 계열사를 통해서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지요?
2. 제품에 동물실험이 필요한 성분을 사용하고 있나요?
3. 브랜드의 모든 제품이 비건인가요? 동물성 성분 함유 여부에 대해 궁금합니다.
4. 동물실험을 필요로 하는 중국 수출을 하고 있나요?
5. 추후에라도 중국 수출 계획이 있나요? 혹시 수출을 목표로 위생허가증 발급을 받거나 수출 위탁업체에게 돈을 지불하신 적이 있나요?
6. 만약 수출하려는 국가가 동물실험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브랜드 정책이 궁금합니다.


 흡사 취조라도 하려는 듯한 이 지루하고 다소 공격적인 메일을 보내고서 답변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파운데이션이나 립스틱 같은 색조 제품은 물론 립밤 하나를 사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단 하나, 화장품 때문에 벌어지는 동물실험을 막고 싶어서다. 사람에게 안전한지 테스트하기 위해 토끼 눈에 무슨 짓을 하고, 쥐나 비글 등의 몸에 무엇을 주입해왔는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만행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나의 '취조 메일'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댔다는 소쩍새처럼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아댄 결과물인 것이다. (몇 번을 고치고 다듬은 최최최최종 버전이긴 하나 아직도 이 질문지가 최선이라고 확신하기엔 조금 자신이 없다...)  


 

비건과 동물실험 여부는 별개


 최근 화장품 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비건 뷰티다. 동물이나 환경을 해치지 않는 화장품을 찾으려는 소비자들의 열망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국내에만 해도 최근 '비건'임을 내세우는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났다.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에서 '비건 라인'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얼마 전 '비건 화장품'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광고판을 달고 지나가던 버스를 보며 감격스러움과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화장품 앞에 붙은 '비건(Vegan)'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뜻하는 바에 비해 여러 의미가 혼용되고 있는 것 같다. 면밀히 따지자면 '비건 화장품'은 제품 내에 동물성 성분이 쓰이지 않은 화장품을 의미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용어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다. 때로 특정 '비건 인증'을 받으면 성분이 비건이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까지 함께 부여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건 화장품이 무조건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성분은 비건이지만 동물실험을 하는 경우도 존재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물성 성분도 없고, 동물실험도 하지 않는 화장품을 구매하고 싶다면 '비건'이면서 '크루얼티 프리(동물실험 안 함)'여야 한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화장품 회사의 '동물실험 안 함'이라는 광고 문구를 곧이곧대로 믿기 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이 있다.



중국 수출, 할 거야 말 거야?


 중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화장품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동시에 화장품 동물실험을 필수로 규정한 거의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비윤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화장품 동물실험을 줄이려는 세계적 추세와 동물 보호 단체들의 목소리, 그리고 화장품 동물실험에 항의해 온 소비자들의 힘 덕분에 중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4년, 중국은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화장품 및 화장품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으로 수출하기를 원하는 화장품에 대해서는 동물실험을 의무로 남겨두었다. 만약, 어떤 브랜드가 중국으로 제품 수출을 하려면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받고 허가증을 제출해야 한다. 그 회사가 설령 자국에서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중국 수출을 한다면 동물실험을 용인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동물실험을 원치 않는 수많은 소비자들은 중국 수출을 선택한 화장품 브랜드를 보이콧함으로써 중국과 화장품 회사 양측 모두에게 선의의 압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중국으로 수출을 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우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라고 광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내가 쓰는 화장품 브랜드가 어느 나라에 수출을 하고 있는지까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광고 문구의 진위 여부는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지난 7월, 중국 정부가 수입 화장품에 대해 동물실험을 강제하던 조항을 2021년 1월 1일부터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엄청난 변화이자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 개정안이 완전한 동물실험 종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첫째, 특수 화장품(염색약, 선크림, 화이트닝 제품 등)을 제외한 일반 화장품(샴푸, 블러셔, 마스카라, 향수 등)에만 동물실험 면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둘째, 일반 화장품이라 하더라도 중국에서 판매되는 도중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시에는 수출 후 동물실험(post-market animal testing)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거대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브랜드의 중국 수출 여부는 여전히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보이콧의 기준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아마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동물실험 안 하는 화장품 찾으려던 것뿐인데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2017년, 이제 막 블로그를 시작해서 한참 열성적으로 관련 기준을 정리하던 내가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는데...'라는 후회와 혼돈 속에 빠졌다. 화장품을 살 때마다 일일이 메일을 보내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국내 블로거들이 공유한 정보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생겨서 해외 블로그와 사이트까지 섭렵해야 했다. 까딱하다가는 중국어까지 배워야 할 기세였다. 그 와중에 나름 열심히 쌓아 올린 기준을 비집고 예외들이 새어 나왔다.  'A 브랜드는 중국에 온라인으로만 수출해서 동물실험 필수라는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데, 이런 경우 보이콧을 해야 돼, 말아야 돼?', 'B 브랜드는 동물실험도 안 하고 중국 수출도 안 하는데, B 브랜드를 소유한 모회사가 중국 수출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해?'... 게다가 중국 수출을 안 한다고 선언해서 안심하고 쓰던 브랜드가 돌연 중국 수출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아악 머리 아파!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



'우리'가 바꿨다는, 더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오밤중에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브랜드에 직접 문의 메일을 보내고, 답변 메일을 공유하고, 필요한 상황에 목소리를 내어 온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수많은 소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를 시전 한 덕분에 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중국 시장 진출이라는 큰 이익을 눈앞에 두고도 선뜻 택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그러한 회사들이 점점 더 늘어난 덕분에 중국의 동물실험 정책도 변화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위에 장황하게 동물실험하지 않는 화장품 기준에 대해 늘어놓기는 했지만, 모든 소비자가 매번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기준을 정하고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경험상 '동물실험 하지 않는 완벽한 화장품을 찾겠어'라는 마음으로 덤비면 오히려 금방 지치고 꺾이기 쉽다. 지향하는 바에 부합한다면 '비건 인증', '동물실험 안 함'이라는 광고 문구 정도에 믿음을 갖고 구매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7번 배신당해도 8번째 화장품을 찾겠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그리고 설마 그 정도로 배신을 당할리는 없겠지...) 그 과정에서 거짓되거나 과장된 문구로 소비자를 기만한 브랜드가 있다면 누군가(나 같은 키보드 워리어?) 혹은 시스템이 철저히 응징하면서 바로잡아가면 되지 않을까.



 새로운 브랜드를 찾는 것이 고되긴 하다 보니 몇 안 되는 아끼는 브랜드가 생겼다는 것도 나에겐 즐거움이다. 최대한 안전한 성분으로, 동물에 대한 신념을 지키며, 패키지까지 친환경적으로 제작하려고 애쓰는 진정성 있는 브랜드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베프처럼 지내게 되었다.(물론 일방적 관계...) 대부분 나의 '취조 메일'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줬던 브랜드들이다. 이전에는 화장품 브랜드에 대해 '어디 한번 내 돈을 들여볼 테니, 내 욕구를 반드시 충족시켜라!' 같은, 다소 적대적인 마음을 가졌다면 소비 방법을 바꾼 뒤에는 달라졌다. 메일을 주고받고, 궁금한 것은 묻고 또 물어가며 관계를 쌓아 올린 브랜드에는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쉽게 갈아타면 그만이던 세상보다는, 때로는 비판이 오가더라도 기다림과 신뢰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브랜드가 더 많이 생겨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좋은 브랜드들이 많아진다는 건 분명 나와, 내가 사는 사회에도 더 이로울 것이다.



 아직도 동물실험이 없는 세상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다. 신약이나 의학 연구 등을 위한 동물실험은 여전히 필수불가결처럼 여겨지고, 동물대체실험 분야에 대한 지원과 연구는 아직 많이 미흡한 단계라고 한다. 그래도 무력감에 빠지기보다는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라도 다시 한번 어딘가에 '취조 메일'을 다듬어 보내면서 '우리'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마음의 무게로 소비를 하려고 노력한다. 내 지폐가 한 표가 되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 동물해방물결에서 작성한 크루얼티 프리 & 비건 or 비건 옵션 브랜드 (2020년 버전)을 공유합니다.

(리스트에 기재되지 않았지만 좋은 브랜드들도 더 있고, 반대로 '낫 크루얼티 프리' 리스트에서 누락된 브랜드도 있다는 점 참고해주세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656772&memberNo=41212477

                                                                                                                                                                                                                                                                                               

* 해외 크루얼티 프리 브랜드 (비건 여부는 개별적으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https://www.crueltyfreekitty.com/list-of-cruelty-free-brands/ 

                                             






















이전 10화 생리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믿고 거르는 즐거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