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요정들을 소개합니다
나의 못난 모습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이를테면 방송작가 일을 두 달째 쉬고 있는 요즘, 처음에는 내 콘텐츠 영역을 확실히 만들기 위해 공부하겠다, 글도 엄청나게 열심히 써보겠다 호언장담했으나 매일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은 낮잠뿐이라거나, 하는 일도 마땅히 없이 삼시 세 끼를 꼬박 다 챙겨 먹었는데 밤중에 배가 꼬르륵거려서 야식까지 챙겨 먹는다거나, 의욕에 가득 차서 도서관 책을 네다섯 권씩 빌려다 놓고 한 달 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반납한다거나... 하나씩 적고 있자니 속이 좀 쓰려온다. 심지어 머나먼 과거의 일들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에... 아무튼 나는 나의 험담을 변명의 여지없이 가장 확실하게 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어렸을 적 엄마가 나를 혼낼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친구들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너랑 단짝인 하니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도 아침 일찍 일어난다던데 너는 이렇게 졸기만 해서 어떡할래~!' 같은 식이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듣는 게 정말 너무너무 싫었는데 희한하게도 어른이 된 뒤에 스스로가 미워서 괴롭히고 싶을 때면 자연스럽게 나를 남과 비교하면서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했다. 가뜩이나 내가 보기에도 나는 결점 투성이 같았는데, 계속해서 누군가와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니 정신건강에는 극도로 해로웠다. 결국 이십 대 중후반 무렵에는 마음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상태로 줄곧 지냈다. 취업 시험 낙방, 실연 등 내 인생의 주요한 실패들로 20대의 후반부를 돌려 막기 하는 사이, 친구들은 멋지게 허들을 넘어내며 점점 멀어져 갔다. 친구들은 안정적이고 번듯한 일도 시작했겠다, 가정도 꾸렸겠다, 이제 탄탄대로겠지 생각하면서 상대적으로 내 처지를 몹시도 한심하게 여겼다. 방에서 혼자 훌쩍이며 보낸 밤들이 많았던 시기다.
그런데 서른 즈음을 지나던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에 나를 빗대어보면서 불행해하는 짓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무슨 노력을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왜일까?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아주 사소한 것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다.
2017년에 채식 관련 리뷰를 위해 블로그를 시작한 후 내 관심사는 동물 문제를 넘어 환경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고 바르고 버리며 우리가 무심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동안 동물과 환경은 무참히 위태로워져가고 있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먹이인 줄로 알고 계속 새끼에게 물어다 나르며 먹였다는 새, 낚싯줄에 몸이 엉켜 상처투성이로 아등바등 대다 발견됐다는 바다거북... 북태평양 어딘가에는 밀려온 쓰레기들이 우리나라 16배 크기만큼의 인공섬을 이뤘다고 했다. 온갖 쓰레기들이 부서지고 부서지다 미세한 크기가 되어 결국 우리 몸에 축적되고 있다고도 했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니 한동안은 우리 곁의 쓰레기만 보였다. '지금의 속도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레기가 생겨난다면 언젠가 나까지도 쓰레기 속에 파묻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쓰레기를 줄여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뒤돌아서면 나오는 쓰레기들에 매번 좌절감이 들었다. 매일 자질구레한 쓰레기 하나까지도 나오지 않게 하기란 역시 도를 닦는 것에 가까운 일이다. 노선을 변경했다. 정기적으로 생겨나는 쓰레기부터 일단 줄여보기로 한 것이다. 설거지할 때는 생분해되는 천연 수세미를 쓰고, 욕실에는 대나무 칫솔과 샴푸바, 천연 섬유 타월(플라스틱 샤워볼 대용)을 두었다. 나중에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서 주방세제 대신 쓸 수 있는 설거지 비누까지 직접 만들었다.
꼭 텀블러만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작은 일상용품들을 플라스틱 용기 등의 생활 쓰레기를 조금씩 줄여나간다는 것이 시시하지만 자꾸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매일 쓰는 이 물건들의 숨겨진 능력은 따로 있었다. 내가 나를 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순간들이 겹쳐지면서 조금씩 쌓아 올려진다. 그러나 지나온 날 동안 나는 나에게 좀처럼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나에게도 좋은 점들이 있었을 텐데 결점에 비하면 대체로 너무 소박하게 느껴져서 들먹이는 것이 낯부끄러웠다. 마음이 가물어가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면서 몇몇 일상용품을 바꾸고 나니 매일 손에 닿는 물건들이 자꾸만 나에게 말해준다. '오늘도 쓰레기를 줄였어', '환경을 생각해서 뭔가를 실천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같은, 나 스스로는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잘 짚어주지 못하는 말들 말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꾸준히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순간이 반복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었다. 5~6년 전쯤의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많이 달라졌으니까.
'착한 소비'라는 키워드가 쇼핑 트렌드에서 몇 해째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에, 환경에, 어려운 이웃에 도움되는 것을 고려하는 소비를 일컫는다. 채식을 하거나, 동물실험하지 않는 화장품을 고르거나, 수익의 일부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브랜드를 소비하거나, 제로웨이스트 용품을 사거나 방법은 다양하다. 이러한 식의 착한 소비는 외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내 경우엔 심리적으로도 충만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러 착한 소비 방법 중에서도 가장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매일 자주 쓰는 주방용품이나 욕실용품 같은 것들을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용품으로 바꿔보는 것 아닐까 싶다. 간단하기도 하고,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것들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생색내기 좋다고나 할까. '나를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씨앗'들을 일상 속 곳곳에 더 부지런히 심어 두고 싶다.
* 제로웨이스트 용품들을 만날 수 있는 편집샵 리스트
지구샵 https://www.jigushop.co.kr/
알맹상점 https://instagram.com/almangmarket?igshid=1r74cxmmk1py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