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은 코끝부터 허물을 벗기 시작한다. 사육장 안에 넣어둔 코르크보드에 코를 비비며 콧구멍이 위치한 부분의 허물을 살짝 뜯어내고, 뜯어진 부분을 서서히 넓혀 나가며 얼굴을 거쳐 몸통까지 허물을 벗겨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 부분의 허물이 마치 발가락 양말에서 발만 쏙 꺼낸 듯한 모양으로 벗겨질 때가 있는데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장갑’이라고 부르며 소중히 간직하기도 한다. 도마뱀은 허물을 벗은 뒤에 자신들의 허물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그 귀여운 ‘장갑’을 얻는다는 것은 여간 귀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마뱀이 허물을 먹어 치우는 것은 천적들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설날에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듯, 허물을 벗어가며 몸집을 키워나가는 도마뱀에겐 자신의 허물이 떡국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키우는 도마뱀은 크리스티드 게코라는 종의 도마뱀이다. 눈꺼풀이 없는 대신 속눈썹 같이 생긴 돌기를 눈 주위에 가지고 있는 크리스티드 게코 도마뱀은 등에 새겨진 독특한 무늬와 온순한 성격, 낮은 사육 난이도 등으로 인해 애완용으로 많이 키워지고 있다.
내가 녀석을 처음 집으로 데려온 것은 지난 늦여름이었는데, 등의 무늬와 색깔이 ‘누네띠네’라는 과자와 무척 비슷하게 생겨 이름을 ‘누네’라고 지어 주었다.
크리스티드 게코 도마뱀은 야행성이라 밝은 낮에는 주로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물도 주로 밤에 벗거나 은신처에 숨어서 몰래 벗겨내는 경우가 많아 누네가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본 건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 밖에 되지 않는다.
누네가 허물을 한참 벗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출근을 앞둔 어느 아침이었다. 이제 막 얼굴 부분의 허물을 뜯어내기 시작했는지 얇은 부직포 같은 허물 속에서 말간 얼굴을 쏙 빼놓고 있는 모습이 꼭 후드티를 입고 있는 것마냥 귀여웠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귀여운 ‘장갑’ 네 켤레를 예쁘게 벗어 놔두길 고대하며 집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티드 게코 도마뱀은 평균수명이 10~15년 정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몇 번이나 더 녀석이 허물을 벗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누네가 평균수명대로 10~15년 정도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벌써 녀석이 한번 죽고 환생해서 다시 살아가고 있는 것보다 나이가 많은 셈이라는 걸 떠올리면 좀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나도 도마뱀처럼 허물을 벗고 말끔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파충류가 아닌 인간인 이상 겉의 허물을 벗긴 어려울 테니 내면이라도 허물을 벗고 말끔하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딱 하나의 이유를 짚은 수는 없지만 요즘 나는 마음이 울렁거리는 순간을 자주 맞이하곤 한다. 나름대로는 감정의 동요 같은 것은 남들에게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누네처럼 조용하고 덤덤하게 허물을 벗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데 말이다.
조금은 뻔한 방법 같지만 올해 목표를 독서로 정한 것도 이리저리 날뛰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씩은 꼭 읽자는 것이 목표였고, 지금까지는 잘 지켜오고 있다.
그 목표 덕분에 내가 허물을 벗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다기 보다는 어떤 실마리 같은 것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우연히 선택한 책의 문장들이 내 마음 속에 무겁게 내려앉아 나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지금까지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만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
다른 책들보다 오래 붙들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의 이 문장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문장인 것 같아 따로 노트에 적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곤 한다. 내가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질책하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듯 해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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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네가 허물을 벗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던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누네는 말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허물을 다 벗은 덕분에 허옇게 일어났던 피부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무늬와 몸의 색깔은 한층 더 빛나는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장갑’은 남겨주지 않았지만 제 할 일을 잘 마친 누네가 조금은 대견스러웠다.
나는 평소처럼 혼자 저녁을 먹고 운동을 다녀온 뒤, 유튜브를 좀 보다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쳤다. 5월이라 벌써 다섯 번째 책이었다. 내가 일하러 간 사이 코르크보드에 몸을 부벼가며 열심히 허물을 벗은 누네처럼 이번엔 내가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허물을 벗을 차례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코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났다. 나도 코끝부터 시작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