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꼬리의 쓰임새

by 플럭스 커패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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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져 미치겠다. 내 주제에 라이터(Writer)라는 말을 써도 되나 싶지만, 이런 걸 두고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이라고 하는가 보다. 좀 걷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밖을 배회해보지만 역시나 허탕이었다. 결국 예전에 끄적이다 만 것들이라도 이어서 써보려고 워드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그나마 1,000자 정도 작성한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누네가 꼬리를 잃었다.’로 첫 문장을 시작한 그 글은 내가 키우고 있는 도마뱀인 ‘누네’가 꼬리를 잃게 된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한 겉모습의 변화, 꼬리가 없어지고 난 뒤 누네의 달라진 행동 등을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냥 관찰 일기처럼 쭉 나열된 그 글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더라는 것. 분명 일단 뭐라도 끄적여 보자하고 시작해 결국 이도 저도 안되고 미완성인 채로 남은 글인 듯 했다.

‘이거라도 살려볼까?’

다른 글들은 어차피 문득 떠오른 생각 같은 것들을 단편적으로 남겨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나마 이어나간다면 그 글이 최선일 것이었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아마도 도마뱀의 꼬리는 적을 유인하는 ‘두 번째 목숨’ 외에도 안전을 위한 제어 장치 역할까지 하던 모양이었다.’로 멈춰져 있었다.


내가 누네의 꼬리를 보며 ‘안전 제어 장치’를 떠올린 이유는 꼬리가 있었을 때와 잃고 난 이후의 차이 때문이었다. 누네가 어딘가를 향해 뛰어들 때, 꼬리가 있었던 시절의 누네는 몸은 앞을 향하지만 꼬리는 원래 있던 자리의 구조물을 잡고 버티는 탓에 몸만 앞으로 고꾸라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크리스티드 게코 도마뱀인 누네는 네 개의 발바닥과 꼬리 끝에 빨판이 달려 있는데, 다른 신체부위는 몰라도 꼬리의 빨판만큼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떨어질 때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누네의 꼬리는 누네에게 호락호락하게 도약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꼬리를 잃고 난 이후의 누네는 이전보다 폴짝폴짝 잘도 뛰어오른다. 그 안전 제어 장치의 방해가 없으니 원하는 곳을 향해 철썩하고 잘도 옮겨 다니게 된 것이다. 대신 착지 지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경우도 확실히 많아졌다. 가끔 사육장 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 쳐다 보면 여지 없이 누네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누네에게 밥을 먹일 때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됐다. 사료를 먹이려고 사육장에서 꺼내기만 하면 하도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통에 녀석을 잡으러 다니느라 난리를 겪곤 한다. 누네가 꼬리를 잃은 이유도 밥을 먹다 말고 소파 밑으로 후다닥 들어가버린 걸 꺼낸다고 빗자루를 들이밀었다가 빗자루를 천적으로 착각한 누네가 꼬리를 스스로 끊어버린 탓이었다. 확실히 누네를 생포하는 건 꼬리가 없는 지금 보다 꼬리가 있던 예전이 더 쉬었던 느낌이다.


도마뱀의 꼬리가 생존에 대한 상징이어서일까. 우리 인간의 뇌에도 ‘도마뱀 뇌’라고 명명된 부위가 있다고 한다. 이 도마뱀 뇌는 우리 뇌에서 가장 처음 진화한 부분이자 인간이 자궁에 있을 때 가장 처음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도마뱀 뇌는 주로 분노나 생존의 문제에 관여한다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생각이나 시도들을 할 때,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 여러 구실들과 두려움을 키워내 방해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딛고 있는 자리가 가장 안전한 곳이며, 다른 곳으로의 도약은 위험한 경우가 많으니 ‘안전한’ 지금 이곳에 머물라는 것. 새로움을 위한 생각이 어떠한 시도로 이뤄지지 않게끔 끊임없이 뒤로 미뤄두도록 하는 ‘저항’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기게 한다는 것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 ‘라이터스 블록 writer’s block’도 이러한 도마뱀 뇌가 만들어내는 저항의 일종이라고.


누네에게 꼬리가 있었듯이, 인간인 나에겐 도마뱀 뇌가 꼬리인 셈이다. 그것은 끊임 없이 내게 ‘그런 재미 없는 글은 차라리 안 쓰는 게 낫지 않니?’ ‘그런 글을 남들에게 보였다가는 망신만 당할 걸?’ 등을 속삭이며 어렵게 잡은 펜을 놓게 만들곤 한다. 그럼 나는 꼬리가 있던 시절의 누네처럼 원하는 착지점에 달라붙는 대신 앉은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마는 것이다.

도마뱀 뇌에 매번 진다는 것은 자신의 꼬리의 방해로 도약하지 못하는 도마뱀 신세와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고 도마뱀처럼 꼬리를 끊어 낼 수도 없으니 이기고 지고를 반복해가며 승률을 조금씩 올려가는 수밖에 없겠다. 어떤 때는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가며, 또 어떤 때는 강하게 부정하기도 하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가끔은 앉은 자리에서 고꾸라지기도 하고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기도 했을 것이다. 답은 결국 꾸준함이겠지. 나는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도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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