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Mar 27. 2017

들소

고되 보이는 얼굴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눈빛, 고되 보이는 얼굴의 들소 사진을 보고 아버지가 생각났다.

지친 기색이 늘 얼굴에 가득하던 아버지의 모습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 늘 한결같던 아버지의 그 얼굴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보고도 보지 않았던 것처럼 굴었던 적도 많았다.


당신의 삶을 이해하기엔 나에게 남겨둔 상처가 너무 컸다. 얼굴을 마주할 때면 늘 그 상처가 피어올랐고, 해가 지나도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욱 벌어져 피가 벌겋게 보이는 아픔이 드러나, 대면할 때마다 괴로웠다. 그로 인해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원망만을 할 뿐이었다.


어릴 적 가난으로 인해 큰집에 맡겨두고 서울로 떠나버린 모습이 떠올라 싫었고, 부자가 되지 못함에 미안해하며 늘 술잔을 기울이며 동그랗게 굽어 있던 등도 싫었다.

매일 같이 이어지던 부모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발을 동동 굴리던 10살박이 아이의 울음 섞인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울분만을 토하던 매일이 지옥 같았다. 나를 가져 결혼을 한 것이 평생의 후회라며 소리치던 고성이 방에 메아리치듯 울리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보게 된 들소의 사진에서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요즘 내가 그런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나 역시 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공허하고 고되 보이는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닮아가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인가 보다. 난 아직도 여전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쩐지 원망스럽게 그의 공허한 눈빛이 머무는 시선 어디쯤의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나 보다.


27살에 나를 낳은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에 나를 큰집에 맡겨두고 서울로 떠났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경험이 부족했던 나이였을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나이를 들고 내가 아버지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날이 올까? 아마도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