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항해하기 위해 잠시 쉬는 중이라 생각하자.
표선 항구를 산책하다가 표선 조선소에서 수리중인 배를 만났다.
물에 둥둥 떠있는 배를 여러 차례 보긴 했어도 이렇게 배의 밑창까지 다 드러난 형태는 처음이었는데,
멈춰 선 배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만약에 이랬으면 어땠을까...
부모님이 화목했더라면, 좀 더 부잣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릴 때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색깔을 잘 봤더라면,
이런 생각들에 갇혀 멈춰서 버렸던 시절,
그때 더 열심히 했더라면...
스스로도 어쩔 수 없었던 문제들을 가지고 한탄만 하던 시간들이 결국 발목을 붙들고 넘어뜨렸고, 그대로 나자빠져 걷잡을 수 없도록 망가져버렸다.
그랬던 내게 찾아온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폐쇄병동에서 보낸 기간들 이었다.
닫혀진 공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개월간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그 시간들이 모여 나의 많은 부분을 바뀌게 만들었다.
한동안 놓고 있던 그림을 다시 그렸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전보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것들과 많은 부분 화해를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표선 조선소의 용창호는 마치 금방이라도 수리를 마치고 바다로 향할 것만 같았다.
걸쳐져 보이는 수평선과 하늘, 그날의 공기들이 멈춰 선 용창호가 아니라 공간을 항해중인 모습같았다.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무엇이든 낡고 지치고 망가지는 법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멈춰야 하는 때가 꼭 한번은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게는 폐쇄병동에서의 기간이 보다 삶을 멀리 항해하기 위해 멈춰 서야 했던 지점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