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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Apr 10. 2019

서귀포 올레시장 할머니

노동이 핥고 간 세월의 흔적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진 이들끼리 서귀포에 모여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다.

서귀포의 이중섭거리에서 모임을 가졌었는데,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며 걷다가 올레시장에 들어가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북적이는 시장의 한 모퉁이에 부업인 것인지 커피를 판매하는 철물점에서 2,000원을 내고 작은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서 분주하게 열무를 다듬고 계시던 할머니를 그렸다.


한 시간 남짓 그림을 그렸는데, 손님에게 물건을 드리는 짧은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묵묵히 열무를 다듬고 계셨다.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어릴 적 큰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큰어머니는 평생을 고된 노동을 했던 탓에 생각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어릴 적 큰집에서 맡겨져 자랄 때도, 그 이후로도 나는 큰어머니의 연세를 크게 신경 써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나중에서야 큰 어머니의 연세를 짐작해보고 주변 분들과 비교해보니, 환경이 달랐다면 그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우셨을 분이었겠다 싶어 꽤나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 모든 것이 고된 노동이 핥고 간 세월의 흔적 탓이었을 테지.


그림을 다 그리고 일하는 할머니에게 그렸던 그림을 보여드렸다.

뒷모습을 그리던 내내 상상했던 할머니의 얼굴이 더욱 큰 어머니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고된 노동이 핥고 간 세월의 흔적이 눈가와 입가의 주름 탓일게다. 


평생 힘든 농사일을 하셨던 큰어머니의 눈가엔 본인의 나이보다도 많은 주름이 서려있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떤 장면에서 이렇게 옛 기억들이 불쑥 찾아와 아련한 그리움을 남기고 갈때가 종종 있다.


할머니께선 자신의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신기하셨고, 언젠가 다시 또 그려보겠노라 할머니의 얼굴과 표정을 카메라에 담아두고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 큰어머니를 잊고 지냈는데, 모처럼 큰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감주가 몹시도 그리웠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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