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조금 더 비싸져도 좋을 것 같다.
얼마 전 EBS의 다큐멘터리 '인류세'에서 아주 먼 미래에 닭이 지질학적 표본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보았다.
오랜 기간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시던 부모님이 귀향을 결정하며 선택했던 첫 번째 일은 양계장이었다. 공장식 양계장 대신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 닭들을 풀어두고 키우는 방식을 선택하셨는데, 일반적인 육계와는 다른 토종닭이라는 특성이 축사의 환경에 큰 역할을 했다.
보통 육계로 사용되는 닭은 30일 정도를 키우고 출하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이윤에 최적화된 기간이다. 물론 부모님의 닭은 토종닭이기에 보통의 육계보다는 오래 살았고, 앞마당은 물론 뒷마당과 별도로 만들어진 축사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AI가 전국을 강타했을 때에도 닭은 비교적 건강한 삶을 이어갔다.
물론 축사의 환경이 AI에 강한 닭을 길러낸 것인지 무지한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또한 반대로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고 해서 케이지를 활용한 공장식 축산의 방식이 좋지 않다며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한 나로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전국을 긴장케 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돼지들이 죽고 있고, 병이 전염되는 되는 것을 우려해 일괄 도축을 실시하기도 한다. 이럴 때 왕왕 나오는 주장처럼 돼지들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키웠다면 열병에 강한 내성을 갖춰 건강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관련된 기사를 보면 으레 돼지들이 불쌍하다거나, 인간의 이기심으로 돼지들이 안타깝게 죽어간다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그래서 너는 고기를 먹지 않냐는 조롱식의 댓글이 그 밑에 달리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참 저열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불쌍하게 생각하면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란 말일까. 혹은 채식주의자가 아니고선 돼지에게 연민을 품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말일까.
저열하게 느껴지는 댓글의 밑에는 댓글의 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해명 아닌 해명이 이어진다.
고기를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적게 먹고 있다는 식이다. 다시 이어지는 댓글에는 한 번을 먹던 매일 먹던 똑같다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돼지를 향하던 연민에 변명처럼 보이는 글을 남겨둔 주인도, 거기에 또 비아냥 거리듯 글을 단 사람도 왜 이렇게까지 이어지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트에 가서 여러 물품을 고르다 보면 고기 코너를 한 번씩 살펴보고 가게 된다. 가격을 훑어보고 샐러드나 우유, 라면 등 다른 종류의 먹거리도 살펴보지만 샐러드나 다른 음식의 가격 대비 고기가 저렴한 편이라 결국 고기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지금의 나는 다른 것들과 비교해 저렴하다는 이유로 고기를 선택하는 경우들이 많다. 드레싱이 포함된 샐러드와 돼지고기의 한 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는 환경이 그럼 고기를 먹자로 귀결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이다. 비싼 물가 대비 가난한 호주머니 사정이 고기의 소비를 부추기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샥스핀과 고래고기, 푸아그라 등의 인식이 바뀔 수 있었던 것도 그것들을 소비하기엔 가난한 내 형편이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그것들을 소비하는 것은 지나친 과소비일 테니까 인식을 바꾸는데 쉽게 동의한 것이랄까.
어릴 적에는 고기가 무척 비쌌다.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이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가 클 테지만, 그것 외에도 키우는데 들어간 정성과 애정도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고기의 소비를 줄여 축산 환경을 바꾸는데 보탬이 되어보자는 말을 종종 보았다. 하지만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공장식 축산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싶다. 닭의 경우 30일 정도 키워 육계로 내보내는데 사실 닭보다는 병아리에 가까운 상태다. 치킨 시장이 왕성해지면서 닭의 소비가 빨라졌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방식을 위해 닭의 수명은 점점 짧아졌다. 그에 맞춰 낮아진 가격이 다른 음식들에 대비 저렴하다는 이유로 치킨의 소비도 늘어났다. 실제로 나만해도 식사대용으로 닭을 선택한 적이 많다. 다른 식사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에.
물가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선 세상 큰일이라 생각하는 나이지만, 지금보다 고기가 조금 비싸져도 좋을 것 같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윤에 보태기 위함이 아니라, 동물들이 살아있는 동안 좋은 환경에서 키워지는 이유로 가격이 올랐으면 하는 것이다. 보다 오래 살고, 더 나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지내다 식탁에 올라왔음 하는 바람이다. 그럼 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고기를 소비하고, 지금보다는 적은 죄책감과 동물에 대한 연민을 건전하게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공장식 축산을 해결하면, 아프리카 돼지 열병과 같은 재앙의 문제가 100%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또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분명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며 좋은 환경에서 자란 고기와 그보다 못한 환경에서 키워져 저렴한 고기 앞에서 고민하다 애써 모른 척 저렴한 고기를 선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숱하게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작게나마 변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케이지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강제로 낳게 된 달걀이 저렴해도, 건강한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이란 문구에 좀 더 고민하게 된 지금처럼 말이다.
닭 한 마리를 그리면서 참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도 볼펜으로 여러 번에 거쳐 그려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제대로 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닭이나 동물에 대해서 잠시나마 여러 가질 생각해본 시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