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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Dec 23. 2019

서울 풍경

제주로 이주하고 가끔 그리워지는 것들


서울과 서울 근교에서 살던 20년 정도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로 떠난 지 2년 차가 되어갑니다.

본래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터라 적응이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주변에 수풀만 가득한 곳에 새로운 터를 잡았어도 말이죠. 


뭐든지 가득 차 있던 도시가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듯 도시엔 뭔가가 늘 가득했어요. 공기마저 뭔가가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죠.

늘 많은 소리가 들리던 도시에선 이어폰을 끼고 다녔는데, 제주로 온 뒤로 이어폰을 자주 끼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네요.


도시에 있을 땐 꿈을 위해 매초를 나눠가며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돈을 벌고, 생활을 하고, 그 사이 꿈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한 생각을 끼워 넣고. 

좌절을 겪기도 하였지만,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렸던 그때의 장소들이 제주로 이주하며 그립지 않을 줄 알았어요.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신 부모님, 서울에서 떨어져 한적한 곳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 이젠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서울의 친구들. 그곳에 내 집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직장도 매번 때마다 바꿔왔기 때문에 남겨둘 미련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보단 삶의 환경을 새롭게 바꾸고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기대감이 더 컸죠.


최근 제주에서 다니기 시작한 직장의 본사가 서울에 있는 탓에 회의차 서울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그만큼의 자동차, 도시의 곳곳에서 내뿜어지는 소리와 냄새로 가득하더군요.

떠나올 때보다 더 복잡해진 느낌이었어요. 아마도 한적한 곳에서 살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욱 그리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와 조금 달라진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왠지 모를 반가움이었어요. 

떠나오고 한동안 잊고 지냈더니 반가움이란 감정이 새롭게 남겨져 있었나 봐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진 한 장을 골라 서울의 풍경을 그려봤습니다. 가득한 도시를 채워 넣는 기분으로 일부러 펜을 선택해 그림을 그렸네요. 펜 드로잉만큼 손을 많이 타는 도구가 또 없으니까 말이죠. 


오늘도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걸어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북적이던 도시에서는 출근길이 매번 힘들었는데, 10분여를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무성한 억새밭과 멀리 보이는 바다가 출근길에 새로운 여백을 제시해주곤 합니다. 서울에선 좀처럼 느끼지 못할 것들이죠. 


언제 다시 서울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가끔 그리워하는 정도의 삶에 충실해볼까 합니다. 




붙임글.

그리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혹시나 관심이 있으시면 함께 봐주셔도 좋겠네요. 

좋은 한주 시작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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