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어?'
아내는 별 반응이 없다.
슬픈 표정인지
무시하는 표정인지
감정 없는 표정으로
찹쌀 도너츠만 계속 만들고 있다.
가끔 그 나이 또래들과
우리 가게에 오던
칠십 대 노인이 던진 말이었다.
캬바레인지 뭔지에서
춤을 추다가 서너 명이 와서
도너츠 한 개씩 먹고 가던
무리들 중 한 명이다.
돈은 많아 보였다.
옷과 신발은 명품이었고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다녔다.
그 사람이 지금 몇 달 만에
우리 가게에 와서,
일하는 아내를 보고
임신했냐고 물어봤다.
내가 그놈 귀싸대기를 날리는
상상이 현실로 일어나기 직전에
이성을 붙들고 한마디 던졌다.
"무슨 그딴 소리를 합니까!!!"
비겁한 노인은
평소에 못 보던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머쓱해 하며 말했다.
"아 아니야 허허허. 몰랐네.
난 또 임신한 줄 알았지.
다 먹었으니 얼른 가자고."
그와 일행들은
우리 가게를 급하게 나갔다.
이성을 되찾고
다시 아내를 봤을 때
아내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나는 너무 슬펐다.
내 아내는 임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산부와 다르지 않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 본 아내는
살이 많이 찐 몸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70대 노인에게 저따위 소리를
듣고 화도 안 내게 되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아내를 만들었을까.
내가 눈이 뒤집어진 걸 보고
급하게 이천 원을 던지고 나간
노인 일행들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