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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Jul 30. 2020

피클이 익는 시간

비트피클

옆 밭 언니한테 얻은 비트를 엄마한테 그냥 드릴까 하다가 그렇잖아도 아빠와 조카 돌보기로 피로가 가득 쌓여있으실 텐데, 내가 뭐라도 만들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 밭 언니는 무말랭이처럼 말려서 요리에 넣거나, 차로 마시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들큼하게 느껴지는 흙냄새 나는 마른 채소 향을 싫어해서 피클을 담기로 했다.

일단 커다란 비트가 세 개나 되고, 양파나 마늘이 더 들어가야 하니 커다란 유리 저장용기를 찾아와서 다시 한번 깨끗하게 씻었다.

포트에 물을 끓이면서 비트와 양파를 내 맘대로 썰기 시작했다.  그다지 재미없는 영화를 한편 틀어놓고, 야채들을 썰고 있으니 시간이 빨리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비트와 양파, 마늘


비트는 붉은색이 얼마나 예쁜지, 썰고 나니 손끝이 붉은색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물로 씻어지는 붉은색이었지만 옷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물과 설탕, 식초, 소금을 대략 비율대로 냄비에 끓이면서 올리브 잎과 허브잎들을 함께 넣어줬다. 허브들을 넣으며 살살 젓고 있자니 마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개구리 숨 한번, 달빛 눈물 두 방울도 넣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뜨거운 물로 병을 소독하고 채소들을 병에 담은 후 끓여낸 촛물을 붓는다. 그리고 나서 통후추 슉슉, 허브를 좀 더 넣는다. 여기까지하면 비트 피클 완성!

피클은 이 각도에서 보는게 젤 이뻐


이틀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고, 어떤 요리에도 어울린다. 통마늘이 들어서 아빠도 좋아하시겠지.


비트 덕분에 붉고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되었다.



맛있게 건강하게 잘 익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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