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

또 실패

by 해성

제도를 만들어놓고, 프로세스를 다 진행해 놓고 마지막에 가서 '넌 못 가'라니.

'불합격' 또 실패였다. 모든 건 삼세번이라지만, 두 번째 불합격을 경험하고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출근길, 집 앞 건널목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이 나를 쳐주길 매일 같이 간절히 바랐다. 극한까지 치달은 스트레스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던 나는 번아웃이라는 단어처럼 이미 재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다.


입사 3년 차,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서가 바뀌었다. 옆 부서 그룹장님의 승진과 함께 조직이 커진다는 이유로 강제 이동을 당했다. PP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PM 업무를 하러 가라고 하니, 쫓겨나는 기분이었다. '왜 하필 나인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아직 어린 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원부서에서 대놓고 울어버렸다. 회사에서 울어서 뭐 하겠는가. 결국 3년 차부터 PM 업무를 시작했다.


PM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힘들어하는 내가 적응하기 힘든 일이 많았다. 소위 ‘부동산’ ‘114’라 불릴 만큼, 유관 부서에서 온갖 문의가 빗발치는 곳이었다. 당시에도 메신저는 있었지만 전화가 더 자연스러웠던 시기였다. 전화를 무서워하던 나는 번호를 검색하고 마음을 다잡은 뒤, 할 말을 적어 연습한 후에야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걸 때도 미리 적어놓고 연습해야 했다. 매일이 쉽지 않았다. 사실 전화는 지금도 적응이 안 된다. 회사 메신저가 발전한 게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각종 문의에 답하고 이슈를 해결해 가며 점차 업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상사도 있었고, 유관 부서에서 뛰어 올라와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대리를 달 무렵에는 이미 일을 자연스럽게 해냈고, 맡은 모델이 잘되며 조금씩 자신감도 생겼다. 해외 전시회 출장 기회도 두 번 있었고, 출장을 다녀오니 어느 정도 자부심도 생겼다.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일도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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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았던 부서 이동의 이력 때문인지 나는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편하고 안정적인 것이 좋다 보니 익숙한 일을 하는 곳에서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힘든 때마다 한두 명씩 계속 부서를 떠나는 걸 보면서도, 난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계속 버텼다. 여기가 싫어서 도망치듯 떠나고 싶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이 좋아서 떠나고 싶었기에 어느덧 한 부서에서 10년을 넘게 일하고 있었다.


인생은 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의지로 회사를 1년 쉬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난 그해, 코로나가 터졌다. 5주 만에 홀린 듯이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그저 멍했다. 차라리 신나게 놀았어도 될 텐데, 가만히 있을 수 없던 나는 대학원이라도 지원해보자 싶어 급히 원서를 냈다. '되면 가고 아니면 말지 뭐.' 했는데 합격했다. 사실 그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등록금 때문이라도 회사엔 복귀해야 했다. 7개월의 휴식을 뒤로하고 9월에 새 학기 시작과 더불어 복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와 대학원을 동시에 병행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대학원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변해가는 세상을 알아가며 조금씩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났다.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세상은 한층 더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 변화에 발맞춰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때마침 5년 이상 동일 부서에서 일한 사람들이 부서 이동을 신청할 수 있었다. 진심을 담아 지원서를 쓰고 다행히 서류 합격에 면접까지 봤다. 면접을 본 부서의 그룹장님이 당일에 별도로 합격 소식을 알려주셨고, 나는 당연히 이동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합격 발표 전날 따로 연락이 왔다. 각종 조직 변경과 인원 조정 등의 이슈로 이동이 어려울 것 같다고. 친절한 설명이 감사했지만, 회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지원을 받지 말든가. 제도를 만들어놓고, 프로세스를 다 진행해 놓고 마지막에 가서 '넌 못 가'라니.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다시 일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해왔는지도 잘 모르겠고 힘들었던 일만 떠오르며 회사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1인 가구인 나는 나를 먹여 살려야 했다.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다가 다시 부서 이동 기회가 생겨 한 번 더 지원했다. 그룹장님께 따로 연락드리니, “이미 면접도 한 번 봤으니 또 볼 필요 없다.” 하셨다. 역시나 바로 이동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다. 원 부서에서 인원을 단 한 명도 내보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처음부터 지원을 못 하게 하든가. 사람에게 온갖 희망을 줘놓고 마지막에 앗아가다니. 남아 있던 회사에 대한 정도 그때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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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잘못한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왜 나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했나,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1년 전에 지원한 사람은 이동했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이 부서에서 12년을 넘게 일을 했고, 이제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데 왜 안 보내주는 걸까. 고과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여기서 일하기 싫은 사람을 굳이 붙잡는다고 생산성이 오를 리 없는데, 단순히 인원수를 채워 놓기 위해 직원 한 명을 남겨 두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 그렇지,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나가라”는 거구나. 정말 잔인한 회사다.


그동안의 모든 스트레스가 한 번에 몰려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이 났다. 장염으로 며칠을 고생하며 가야 하는 출장도 가지 못했다. 어느새 책임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런 내가 나도 싫었다. 어느 출근길, 정말로 달리는 차에 뛰어들 뻔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병가를 내고 쉬기 시작했다.


극복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음이 망가진 것만큼 몸이 생각보다 많이 망가져 있었다. 쉬고 있었지만 이미 문제가 생긴 곳은 수술이 필요했다. 수술 후 복직했지만 이미 내 몸은 회사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회복 기간이 너무 짧아 더 버티기 힘들었다. 이대로는 출근하다가 쓰러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이 상태로 회사에 다니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아예 이 김에 때려치워야 하나, 그냥 어느 시골 한구석에 처박혀 숨만 쉬면서 요양을 하고 살면 괜찮지 않을까.' 그동안 모은 돈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계산하고, 정말 나갈 생각으로 책상을 정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아팠던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퇴사 대신 다시 회사를 잠시 떠났다.


얼마 전 같은 부서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는 여전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매니징 능력이 전혀 없는 윗사람은 여전히 가이드도 없고, 떠날 생각도 없고, 진짜로 일할 실무진은 부족하다. 돌아갔을 때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는 아예 접었다.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주는 밥 맛있게 먹고, 월급날 기다리며 좋아하던 밴드 다시 하면 다닐 만하겠지.


어차피 정답은 없다. 더 이상 나를 갉아먹을 스트레스가 쳐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단단히 세우고, 너무 고통스러울 땐 임시방편으로라도 머릿속에 비상구를 만들어놔야겠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에 너무 힘쓰지 말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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