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의 글을 다시 정리해보는 중이라 중복되는 표현이 많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흐트러진 공간은 딱 통제할 수 없게 된 내 영혼의 모양이었다.
가치는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무의미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살아가고, 그 선택이 모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개개인의 생이 다 다른 이유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학창 시절의 선택은 온전히 내 의지가 아니었다. 이과를 포기한 것도, 재수를 선택하지 못한 것도 모두 그랬다. 점수와 등급, 갈 수 있는 학교,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느꼈던 열등감, 그리고 포기를 강요당했던 순간들. 과연 그것들을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으니, 슬프게도 내 선택이 맞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후회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다. 물론 그 세월 동안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선택들이 있었겠지만, 당시의 나 자신이 너무 약했던 것에 대한 슬픔이 커서일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생각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무사히 취업했다. 이왕 힘들게 들어간 회사이니 신입사원 시절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꿈도 컸다. 그러나 사내 정치에 진작부터 신물이 난 나는 일찌감치 많은 것을 내려놓고 회사 생활을 해왔다. 책임감 하나로 일은 꽤나 열심히 했지만, 그 외의 것에는 신경을 껐다. 오히려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것도 같다. 그저 가늘고 길게 가고 싶었을 뿐인데, 해야 할 일이니 열심히 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나는 바보처럼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일하고 있었다.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나는 편하고 안정적인 것이 좋아 그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한 부서에서 계속 버텨냈다. 도망치듯 떠나는 것은 싫었고, 이곳이 싫어서가 아니라 어딘가가 좋아서 떠나고 싶었다. 마침, 대학원도 졸업했고,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그 바람을 쫓아 부서 이동을 신청했고, 면접까지 합격했으나 인사 및 조직 문제로 두 번이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좀 더 일찍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출근길에 사고가 나길 기도하다가, 결국 휴식을 택하고 나서야 나는 제대로 무너질 수 있었다. 이미 심각했던 번아웃과 원했던 것을 이루지 못한 데서 온 좌절감은 아름답게 뒤섞여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게 했다. 마음속에서 '제발 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을 텐데, 꼭 아파야만 정신이 든다. 하루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 채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던 나는, 먹고 마시고 토하며 스스로에게 더할 수 없이 잔인한 학대를 가했다.
그렇게 나를 관리하던 관리자가 사라졌다. '인사이드 아웃 2'처럼 머릿속의 본부가 통째로 사라진 기분이었다. 자아의 형태가 희미해지고, 신념도 무너진 채 길을 잃고 헤맸다. 정신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으니 일어나 세수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이 침대에 붙어있으니 배달 음식 용기와 술병이 하루가 멀다 하고 쌓여갔다. 온갖 곳에 옷가지와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졌다. 흐트러진 공간은 딱 통제할 수 없게 된 내 영혼의 모양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이가 매일 글쓰기를 제안했다. 하루에 단 한 줄, 아니 한 마디라도 남겨보자고 했다. 글 쓰는 데 재주는 없지만, 매일 기록을 남긴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남겨진 흔적들을 모아보니 일기장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꾸준함'이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울컥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멋대로 적어 내려가자, 흐릿했던 나 자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줄 더 적어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눈앞이 너무 번잡스러워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나를 조금씩 제어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조금씩 하고 싶었던 것들이 떠올랐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다. 이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어느 시골에 처박혀 숨만 쉬고 살고 싶기도 했지만, 자유만큼이나 안정적인 삶도 중요한 내게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아직은 돈벌이가 필요했다. 그동안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닌 것이라면, 이제는 꿈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막상 복직을 택하고 나니 벌써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이제는 정말 안다. 삶은 직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쏟을 수 있는 열정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잘 해내려는 마음은 결국 욕심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제 그 열정의 방향과 각도를 재설정하는 중이다. 나에게 주어진 나머지 3개월, 내가 내리는 선택들이 나를 다시 살아가고 싶은 삶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