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해, 2025년
세상에 재수가 없으려니 이렇게 없고 또 없을 수가 있나 싶었다.
말 그대로 2025년은 '생존'의 한 해였다.
24년의 끝을 수술대 위에서 보내고 25년의 시작도 병원에서 맞았다. 회복과 악화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몸은 좀처럼 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겨우 붙들어 두었던 마음조차 다시 무너져 내렸다. 분명 내 안에서 쉬라는 외침이 있었을 데 충분히 낫지 않은 몸을 이끌고 억지로 복직했다. 이미 7개월을 쉬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쓸데없는 책임감은 이럴 때만 발휘가 된다.
출근을 시작하자마자 온몸이 동시에 고장 나기 시작했다. 수술 후유증은 물론이거니와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던 곳까지 망가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블랙아웃으로 쓰러졌고, 하루 일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당연히 집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출근은 엄두도 못 고 병원도 무슨 정신으로 다녔던 건지 잘 모르겠다. 2주쯤 더 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미 무너진 체력을 어떻게든 붙잡고 주어진 일을 했다. 시켜서 한 일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사에서 아무도 정리하지 않았던 일을 내가 마무리했다. 발표도 무사히 끝나고, 칭찬까지 받았다.
직장인에게 일로 인정받는 순간만큼 뿌듯한 게 또 있을까. 그렇지만 그 인정을 뒤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윗사람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직장인이라는 것 자체가 버거워졌다. 매일 같이 차에 치이길 기도하던 나는 사직서를 집어던지기 직전까지 생각이 치달았다. 의사는 이런 나를 보고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보다는 일단은 더 쉬어보자고 했다. 결국 난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 내려놓은 뒤 다시 쉬러 들어갔다.
회사와 멀어져 온전히 나아지는 것에만 신경 썼다. 길게 보자는 마음으로, 이번만큼은 나만을 위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조금씩 단단해지는 듯했다.
문제는 평가였다. 하루라도 일을 했다면 받아야 하는, 애초에 공정성이 의문인 평가에서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하위를 받았다. 실제 근무 기간과 완료한 업무를 토대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조직 안에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당시 나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없었기에, 보이지 않았기에 가장 쉽게 던져진 돌을 맞았다. 직장 생활에 평가는 연봉과 직결된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시 돌아왔는데, 이건 치명타다.
인생 길게 보면 참 별것 아닌 문제다. 각종 중간, 기말고사와 수능, 대학 학점까지 수없이 많은 평가를 지나쳐왔지만, 그 점수들이 나의 본질을 대변하거나 증명하지는 않는다. 물론 거대한 조직과 그 제도 안에서 바꿀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개인이 무력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해 내내 정말 아프고 또 아팠다. 조금 나아질 만하니 119에 실려 갔고, 몇 달을 준비한 여행도 취소해야 했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떠나보내며 마음의 상처도 늘었다. 자기 계발을 해보겠다고 신청한 프로그램은 사기였고, 150만 원이 증발했다. 15년 만에 처음 하위 평가를 받았다. 세상에 재수가 없으려니 이렇게 없고 또 없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 모든 흐름은 내가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불운의 파도였다.
확실한 것은, 25년의 나는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나를 위해 결정했다. 물론 잘못한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더 다치고 싶지 않았고, 더 부서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들이었고, 결국 나를 살린 선택들이다. 회사는 나에게 낮은 점수를 줬을지언정 나는 나 자신에게 최고점을 주고 싶다.
극한의 트라우마를 딛고 이제 다시 걸음마를 시작했다.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나는 단단해졌다. 그러니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오늘 하루는 잠시 넘어져 있어도 괜찮다.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잠깐만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자.
I will never die 세상이 나를 찢고 무너뜨려도 눈물을 삼키고 일어나
I will never die 세상과 부딪히고 쓰러뜨려도 내 피를 삼키고 일어나
에픽하이, <혼(魂)>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