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붉었다. 살갗을 핥는 바람은 쇠 냄새를 풍겼고, 뼈에 스며드는 모래는 입 안을 메마르게 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 모든 것이 붉음의 끝자락에서 언제든 사라질 듯 떨리고 있었다.
중앙에, 거대한 사자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기와 피로 이루어진 사자가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쌓인 시선들이 굳어져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의 몸은 거울이 되어 하늘과 사막을 비출 뿐, 자기 자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표면은 사막의 열기에도 차갑게 식어 있었고, 그 차가움 속에서 보이지 않는 떨림이 일고 있었다.
그의 눈은 비어 있었다. 아니,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을 통해 사막 너머의 하늘이 그대로 보였다.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정작 ‘보는’ 것은 없었다.
발아래 모래에는 실제 얼굴들이 묻혀 있었다. 사자가 비춰주었으나 결코 보지 못했던 이들의 얼굴이었다. 얼굴들은 일그러져 울부짖었으나 소리는 모래에 흡수되어 버렸다. 비는 내렸으나 아무것도 젖지 않았다.
사자의 몸 깊숙한 곳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어느 날, 사막에 한 아이가 나타났다.
교실에서 발표할 때도, 복도에서 넘어졌을 때도, 생일날에도 - 늘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보지는 않았다. 시선들은 그를 스쳐 지나갔고, 때로는 그 위에 머물렀지만, 결코 그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말라붙은 입술, 해가 잠긴 눈동자를 한 채, 아이는 묵묵히 사자 앞으로 걸어갔다.
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릴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비추는 것이 그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보는 듯, 아무것도 아닌 듯.
아이가 다가서자, 그의 그림자가 거울의 몸에 닿았다. 순간, 사자의 표면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거울 속에서 다른 아이가 보였다. 울고 있는 아이, 울음을 참고 있는 아이, 웃는 척하는 아이—모래에 묻혀 있던 수천 개의 표정이 하나의 얼굴로 모이고 있었다.
“왜...”
아이의 목소리가 사막에 스며들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입이 없었다. 그 입은 이미 모래 속 얼굴들에게 나누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
아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너도 무서운 거구나.”
사자의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거울 표면에 거미줄 같은 금이 퍼져나갔다. 그 틈 사이로 처음으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쉬익—
그것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숨소리였다.
“혹시,” 아이가 사자의 빈 눈구멍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너도... 나처럼?”
금이 더 깊어졌다. 사자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리 없이 내리던 비가 균열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뚝.
첫 번째 물방울이 모래에 떨어졌다.
뚝. 뚝.
모래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그 위의 얼굴들이 조금씩—아주 조금씩—눈을 떴다.
사자가 조각나기 시작했다. 거울의 파편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아래에 있던 것이 드러났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한 줌의 젖은 모래와, 마침내 들려오는 목소리뿐.
“나는...”
그것은 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모래 속에서 깨어난 얼굴들이, 그동안 침묵했던 모든 이들이 함께 내는 소리였다.
“나는 너를 지켜봤어. 하지만 이제는—”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얼굴들이 모래에서 일어나 바람에 흩어져갔다. 소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그들은 공기가 되어 누군가의 숨결에 스며들고 있었다.
아이는 발밑에서 작은 거울 조각을 주워 들었다. 손바닥만 한 파편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상한 따스함이 있었다. 차가운 거울이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를 품은 유리 같았다.
아이는 그것을 품에 안고 사막을 떠났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이는 그 작은 거울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사자의 균열 속에서 피어난 따스함과, 모래에서 깨어난 목소리들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엔 자신의 얼굴만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아주 조금씩—그 안의 다른 얼굴들, 그리고 서로를 보기 시작했다.
사막은 여전히 붉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는 새로운 발자국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아가는 발걸음들이. 누군가에게 보이려는 발걸음들이.
그리고 아주 가끔, 바람이 불어올 때면 사막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
그 작은 거울에는 과연 무엇이 비칠까? 보는 자의 얼굴인가, 보이는 자의 얼굴인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