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이름
우산이 흔들렸다.
물이 요동쳤다.
물고기들이 움직였다.
처음으로, 다르게.
세 물고기가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은빛은 과거를 놓았고, 금빛은 미래를 멈췄다. 검은 물고기가 중심이 되어 그들을 이끌었다. 빙글빙글 돌더니—
하나가 되었다.
우산이 손에서 떠올랐다. 아이가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산은 꿈속에서처럼 자연스럽게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안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모래에 닿기 전에 증발했다. 물방울들이 작은 별이 되어 하늘에 흩뿌려졌다.
물고기는 이제 하나였다. 더 크고, 더 빛나는 모습으로. 우산을 벗어나자 투명한 날개를 펼쳤다. 시간의 물고기는 고래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아이의 투명함이 멈췄다.
오히려 반대로, 흐릿했던 윤곽이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쪼개졌던 시간이 하나로 모이면서 아이의 존재도 단단해졌다.
발이 모래에서 떨어졌다.
무게가 사라졌다.
중력이 뒤집혔다.
공기가 물처럼 느껴졌고, 그 속에서 아이도 헤엄칠 수 있었다.
늑대는 사막에 남았다.
아이가 내려다봤다. 늑대는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저 자연스러운, 당연한 이별이었다.
"고마워, 늑대야. 네가 지켜준 시간들."
늑대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림자에서 실체가 되었다. 은빛 털을 가진 아름다운 늑대가 되어 모래 위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고래가 다가왔다.
거대했다. 아이 전체가 고래의 눈 하나만 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고래는 아이를 삼키지도, 태우지도 않았다. 다만 등지느러미 끝을 아이의 손끝에 살짝 대었다.
접촉.
찰나.
폭발.
모든 시간이 한 점으로 수축했다가 다시 폭발했다.
아이는 바다였고 사막이었고 하늘이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찰나에 영원이 담겨 있었다.
바다였던 시절의 기억. 물고기들의 꿈. 별들의 속삭임. 그리고 이름. 잊었던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이름. 이 세계에서만 불릴 수 있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
고래가 말했다.
노래로. 그 노래 속에는 언어가 없었지만 의미로 가득했다.
이제 아는가? 네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결이다. 바다와 사막 사이를 오가는. 형태는 변해도 본질은 남는."
하늘이 변했다.
두 개의 태양이 서로에게 이끌렸다. 붉은 것과 푸른 것이 나선을 그리며 춤추듯 다가갔다. 어제와 내일이 만나 오늘을 만들었다. 그 빛이 섞여 이름 없는 색을 만들었다. 세상에 처음 나타난 색이었다.
아니, 잊혔다가 다시 찾은 색이었다.
아이는 다시 내려갔다.
깃털처럼 부드럽게. 모래가 발을 받아주었다. 따뜻했다. 두 태양의 빛이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온기였다.
늑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살아있는, 은빛 털을 가진 아름다운 늑대였다.
"함께 갈래?" 아이가 물었다.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앞서 가지 않았다. 나란히 걸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가 심은 씨앗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리고 수백 개. 아이의 발자국마다 씨앗이 떨어졌고, 그 모든 씨앗이 동시에 자라났다. 사막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직 바다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죽은 사막도 아니었다.
멀리서 빗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비였다. 고래들이 흘린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쁨의 눈물.
사막은 여전히 사막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막이었다. 모래알들이 작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음악이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고래들의 노래였다.
아이와 늑대는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이제 알았다. 바다와 사막이 만나는 곳. 끝이 시작이 되는 곳. 모든 이름이 생겨나는 곳으로.
두 개의 태양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색의 빛이 온 세상을 물들였다. 그 빛 아래서—
아이는 다시 우산을 들고 있었다.
이제 그 안에는 물이 아니라 비가 담겨 있었다. 아직 내리지 않은, 앞으로 내릴 모든 비. 그 속에서 작은 고래 한 마리가 유영했다.
새로운 바다의 씨앗이었다.
아이의 이름이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물결이다."
그 순간 사막에 첫 번째 빗방울이 떨어졌다.
늑대가 비를 맞으며 웃었다. 은빛 털이 젖어 반짝였다.
멀리서 고래들의 노래가 더 크게 들려왔다. 환영의 노래였다. 돌아온 이를 위한, 새로 태어난 이를 위한.
모든 끝은 시작이었고,
모든 사막은 미래의 바다였으며,
모든 바다는 과거의 사막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를 헤엄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고래는 물 위를 헤엄치지 않는다.
하늘을 헤엄친다.
마음을 헤엄친다.
시간을 헤엄친다.
그리고 이제, 아이도 헤엄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