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여우의 성배 (2)

우리는 의심했다, 그래서 길을 만들었다.

by Velinastra
발 없는 여우의 성배.png


4장. 모방의 망설임


그날 이후, 흰 꼬리는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원을 그리다가 조금씩 바깥으로 벗어났다. 몇 걸음, 열 걸음. 그러다 다시 돌아왔다. 다음 날은 조금 더 멀리 갔다가 돌아왔다. 마치 바다에 발을 담갔다 빼는 것처럼, 자유를 시험하고 있었다.


다른 여우들이 그를 지켜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갈래는 자신의 두 꼬리로 실험을 시작했다. 한 꼬리로는 뒤 여우에게 주고, 다른 꼬리로는 모래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곡선과 직선이 뒤섞인, 원이 아닌 다른 형태들. 그러다 죄책감이 몰려오면 두 꼬리를 다시 서로 꼬았다.


새로 온 여우 하나가 발이 있는 그대로 원 주변을 걷고 있었다. 기존 여우들이 다가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확신에 차서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잘린 발을 보여주려다가, 그냥 돌아섰다.


불타는 꼬리는 더욱 빠르게 원을 그렸다. 이제 그를 따르는 여우는 서너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낮에는 더 크게 외쳤다. 그의 피로 그려진 도랑은 점점 깊어져 작은 해자가 되었다.


며칠이 지났다. 아무도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원은 여전히 돌아갔지만, 예전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는 타원이 되었고, 어떤 순간에는 거의 끊어질 뻔했다.



5장. 임계점


어느 날 밤, 구멍눈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무도 몰랐지만, 분명히 선율이 들렸다. 언어가 아니었다. 단어도 아니었다. 그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원초적인 울부짖음이자 애도였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상실과 희망이 뒤섞인 소리였다.


원이 멈췄다.


여우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뒤쪽 눈으로, 앞쪽 눈으로, 감긴 눈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각자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려고 했다. 오래 억눌러 두었던 감정들—슬픔, 후회, 그리움, 분노.


갈래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거스름이 자신의 반대 방향 궤적을 멈췄다. 그리고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대각선으로—기어가기 시작했다.


흰 꼬리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는 원을 완전히 벗어나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떠나기 전, 그는 모래 위에 긴 문장을 남겼다.


'끝이 있는 직선'


불타는 꼬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구멍눈의 노래에 묻혀버렸다.



6장. 여러 개의 길


며칠 후, 갈래는 자신의 두 꼬리를 서로 묶었다. 그리고는 굴렁쇠처럼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러워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새로 온 발 있는 여우가 사막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다른 여우들은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다.


거스름은 나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번 조금씩 바깥쪽으로, 조금씩 더 넓게. 그의 궤적은 소라 껍질처럼 아름다운 나선이 되었다.


어떤 여우들은 여전히 발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불타는 꼬리의 말을 듣고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실험하기 위해.


또 어떤 여우들은 발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잘린 발이 다시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다른 방법들을 찾아냈다. 선인장 가시로 만든 의족이나, 거북이 등껍질을 이용한 썰매.


불타는 꼬리는 여전히 원을 그렸다. 이제 그를 따르는 여우는 없었다. 그는 홀로 완벽한 원을 그렸다. 너무나 완벽해서 점점 작아지는 원을. 마침내 그는 원의 중심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제자리에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이제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며칠 후, 자유가 주어진 것을 두려워하는 여우들이 나타났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원 안에서는 적어도 다음에 뭘 할지 알았는데."


두어 마리가 불타는 꼬리의 작은 원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기 자신만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원 밖에 서서 망설였다.


검은 태양은 더 이상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사막 전체를 떠돌았다. 어떤 이에게는 머리 위에서, 어떤 이에게는 발밑에서, 어떤 이에게는 내면에서 빛났다.



7장. 발 없는 여우의 성배


꼬리 짧은 여우는 사막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며칠을 기어간 끝에, 그는 또 다른 사막과 만났다. 실망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다른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날개 없는 새들,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들, 껍질 없는 거북들.


모두 무언가를 잃었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첫 사막으로 향했다. 원래의 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다—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곡선으로, 때로는 지그재그로.

모래 속에서 그는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반쯤 묻힌 책이었다. 표지에는 '발 없는 여우의 성배'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발톱이 있던 자리의 굳은살로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막은 끝이 없었다. 밤과 낮이 뒤섞이며..."

그것은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소름이 돋았다. 불타는 꼬리, 흰 꼬리, 그리고 자신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결말은 여러 가지였다. 한 번 펼칠 때마다 달랐다. 어떤 결말에서는 모든 여우가 발을 되찾았고, 어떤 결말에서는 사막 자체가 신기루였다.


그는 책을 가지고 원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그곳에는 수많은 길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여우들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각자가 읽은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거스름은 책을 거꾸로 읽었다. 그러자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구멍눈이 물었다. "이 책이 진짜일까, 우리가 진짜일까?"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날 밤, 검은 태양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꼬리 짧은 여우는 책을 모래에 묻었다. 다음 날 책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발 있는 여우의 성배'


에필로그. 원의 바깥


사막은 여전히 끝이 없었다.


흰 꼬리는 우물가에 도착했다. 말라버린 우물이었지만, 그는 매일 조금씩 파내려 갔다. 발 대신 꼬리로, 이빨로, 온몸을 사용해서. 마침내 축축한 진흙이 나왔다. 물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바닥에는 작은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거스름은 자신만의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어제가 내일이었고, 죽음이 탄생이었다. 다른 여우들과 만날 때마다 그는 '잘 가'로 인사했고, '어서 와'로 작별했다.


갈래는 마침내 자신의 두 꼬리를 받아들였다. 하나의 꼬리로는 과거를 그렸고, 다른 꼬리로는 미래를 더듬었다. 두 방향으로 동시에 가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이 그만의 방식이었다.


구멍눈은 눈을 되찾았다. 육체의 눈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눈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았다—여우들의 고통, 사막의 꿈, 별들의 외로움.


꼬리 짧은 여우는 문득 자신이 다시 원을 그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더 큰 원을, 자신도 모르게. 나선이라 믿었던 그의 길은 어쩌면 또 다른 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여섯 개의 발을 가진 새로운 여우가 왔다. 그는 자신의 발이 너무 많다며 괴로워했다.


꼬리 짧은 여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짧은 꼬리를 보여주었다. 말 대신, 상처를 보여주었다. 여섯 발 달린 여우가 울먹이며 발 하나를 자르려 하자, 그는 조용히 그 발을 감쌌다.


두 여우는 아무 말 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갔다.


붉은 성배는 투명해져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 햇빛이나 달빛이 특정한 각도로 비출 때, 그것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검은 태양은 더 이상 검지 않았다. 희지도 않았다. 그것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색이었다—본 자만이 알지만 설명할 수 없는 색.


사막 위로 또다시 별빛이 이상하게 일렁인다.


여우들은 그 빛 아래서 각자의 길을 간다. 발이 있든 없든, 꼬리가 길든 짧든, 눈이 앞에 있든 뒤에 있든.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가는지만 안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사막 저 멀리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인지, 노래인지, 누군가의 속삭임인지 알 수 없었다.


몇몇 여우의 귀가 그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사막은 다시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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