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시장
프롤로그: 꽃이 핀 손목
봄이었다.
나그네는 왼쪽 손목을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흉터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작고 하얀, 향기 없는 꽃. 만지면 따뜻했다. 살아있었다.
일 년 전, 이것은 화상이었다. 뜨거운 커피가 쏟아지던 아침, 누군가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내가 조심했어야..." 그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커피 말고. 우리가 이렇게 된 거..."
컵이 깨지는 소리. 커피가 바닥에 퍼지는 소리. 그리고 침묵.
그는 기억한다. 그날 아침을. 이상하게도 얼굴이 선명하지 않다. 목소리의 높낮이는 기억나는데 억양은 흐릿하다. 함께 살았던 집의 구조는 아는데 벽지 색깔은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일 년 전, 비 오는 밤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봄이 왔어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네, 왔네요."
"꽃이 피었나요?"
"...어떻게 아셨죠?"
"저도 피었거든요. 상처가 있던 자리에."
그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도 모든 것이 전해졌다. 우리는 무언가를 함께 잃었고, 무언가를 함께 얻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상대방이 말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요?"
"네."
전화가 끊어졌다. 나그네는 수화기를 한참 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손가락이 플라스틱 표면을 더듬었다.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혹은 무언가를 놓아주려는 듯.
그는 일 년 전, 그 밤을 떠올렸다.
1부: 첫 번째 밤 – 발견
불면의 사흘째였다.
나그네는 도시 외곽을 배회하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입안에 쓴맛을 남기며 사라졌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걸었다. 기억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번이 세 번째 이별이었다. 스물하나의 첫사랑은 말하지 못한 것들로 끝났다. 스물여덟의 약혼자는 너무 많이 말한 것들로 무너졌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은 침묵 속에서 떠났다—서로를 이해한다고 믿으며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세월 끝에.
세 번 모두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혼자.
손목의 화상이 쑤셨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붉고 일그러진 피부. 아물고는 있었지만, 그 아래 무언가는 여전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화상이 겉으로만 생긴 것이 아니라 뼛속까지 번진 것처럼.
자정이 지났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흘러왔다. 꿀과 후추가 섞인 듯한, 묘하게 그리운 냄새. 골목 깊숙한 곳에서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막은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입구의 종이 바람에 흔들리며 울렸다.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마치 물속에 들어온 듯 모든 소리가 둔탁했고, 숨 쉴 때마다 달콤씁쓸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입구 옆 낡은 나무판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감정의 시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규칙:
1. 감정은 기억으로만 거래됩니다.
2. 기억 1개 = 하루치 선명한 기억
3. 기억 0.5개 = 한 순간의 단편적 기억
4. 기억 2.5개 = 며칠간의 연속된 서사
5. 일부 감정은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변동됩니다.
주의사항:
- 어떤 기억을 잃을지 선택할 수 없습니다.
- 감정이 필요로 하는 기억을 가져갑니다.
- 잃어버린 기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 단, 몸은 기억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품절입니다.
(마지막 재고: 1987년 봄)
그곳은 시장이었다. 감정의 시장.
가판대 뒤에 늑대들이 서 있었다. 다만, 그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다. 짐승이라 하기엔 너무 사람 같고, 사람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짐승 같았다.
병들이 가판대 위에 놓여 있었다. 각각 다른 빛을 내며 깜빡이거나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작은 푯말들이 있었다.
첫사랑의 설렘(만료일: 2028년 봄) - 기억 2.5개
월요일 오전의 절망감 - 기억 0.5개 (시즌 할인)
순수한 그리움 - 기억 1개
복잡한 그리움(원망 포함) - 기억 2개
분노의 정당함 - 기억 2개 + 경고
희망 - 품절 (입고 예정 없음)
한 늑대가 다가왔다.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왼쪽 앞발이 절뚝거렸다.
"처음이십니까?"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둘러보시죠. 원하시는 감정이 있으시면 말씀하시고요. 단, 우리는 기억으로 거래합니다. 감정을 얻으려면 기억을 내놓아야 하죠. 어떤 기억이 사라질지는... 감정 자체가 선택합니다. 더 복잡한 감정일수록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만큼 당신의 더 깊은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죠."
나그네는 병들을 보았다. 손을 뻗었다가 거뒀다. 각 병 속에는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빛이 맥박처럼 뛰었다.
시장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 사람이 가판대 앞에 서 있었다. 서른 중반쯤으로 보였다. 그의 손에는 '순수한 그리움'이라 적힌 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계속 병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그네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망설임이 나그네에게 익숙했다. 놓고 싶지만 놓을 수 없는 것. 잊고 싶지만 기억하고 싶은 것.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그네는 알았다. 지난 사흘 밤 내내 그것과 싸워왔으니까.
그 사람이 결심한 듯 병 입구를 열었다. 라벤더 향이 퍼졌다. 조심스럽게 입술로 가져갔다. 한 모금. 두 모금. 병을 다 비웠다.
얼굴에 깊은 미소가 번졌다. 눈을 감았다. 행복해 보였다. 진심으로.
잠시 후, 눈을 떴다. 그리고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빈 공간을 더듬었다. 누군가의 손을 찾듯이. 아니, 자신이 왜 손을 뻗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제가..." 그가 늑대에게 물었다. "뭘 찾으러 온 거였죠?"
"중요하지 않습니다." 늑대가 답했다. "원하시던 감정을 얻으셨으니까요."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가려다 나그네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나그네를 보았다. 뭔가를 알아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신도 누군가를 잃으셨군요."
나그네는 대답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사람들만 아는 표정이 있거든요. 헛것을 찾는 듯한, 그러면서도 찾기를 두려워하는." 잠시 멈췄다. "저는 방금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미소를 지었다. "홀가분합니다."
그 사람은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세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혹은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 하지만 결국 천막 밖으로 사라졌다.
나그네는 오래 서 있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저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정말로. 그런데 왜 자꾸 뒤를 돌아보았을까. 몸은 무언가를 기억하는데 마음은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나그네는 병들을 보았다. 손을 뻗었다가 거뒀다. 다시 뻗었다가 거뒀다.
선택할 수 없었다.
새벽 한 시가 되자 조명이 변했다. 더 붉어졌다. 가격 푯말들이 일제히 바뀌었다. 어떤 것은 값이 떨어지고, 어떤 것은 올랐다.
"시간대마다 가격이 변동되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안경 낀 늑대가 설명했다. "새벽 두 시에는 '외로움'이 가장 비싸지죠. 세 시에는 '망각'이요. 사람들이 원하는 게 시간마다 다르거든요."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들은... 왜 이런 일을 합니까?"
늑대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한때 우리는 인간의 감정을 먹고 살았습니다. 공포, 슬픔, 외로움. 하지만 이제는 거래하는 법을 배웠죠. 더 문명적이지 않습니까?"
"그게... 답입니까?"
"아니요." 늑대의 눈이 깊어졌다. "진짜 이유는 우리도 경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짐승도, 완전한 인간도 아닌. 인간의 기억을 먹으면, 우리는 잠시 인간의 꿈을 꿉니다. 그 꿈속에서만 우리는 완전해질 수 있죠."
그가 덧붙였다. "이 시장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첫 번째 인간이 첫 번째 후회를 했을 때부터입니다. 우리는 그 후회를 먹고 살았죠.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먹어치우는 것보다 거래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것은... 공생?"
"아니요." 늑대가 쓸쓸하게 웃었다. "여전히 착취입니다. 다만 좀 더 정직한 착취죠."
나그네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병들을 보았다. 하나하나. 하지만 어느 것도 그의 손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시장은 점점 더 붉어졌다. 나그네는 천막 입구로 향했다.
"다시 오실 겁니다." 늑대가 뒤에서 말했다.
나그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다. 비는 더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그는 손목을 만졌다. 화상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 감각엔 변화가 있었다. 날카롭게 아픈 것이 아니라, 넓게 번져가는 듯한—마치 아픔이 형태를 바꾸어 가는 것처럼.
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불면의 나흘째였다.
적어도 이제 그는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다음 이야기 「기억의 대가」은 9월 7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