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침묵이 아니었다.
오래된 꿈의 숨결이 스며들고 있었다.
숲속 깊은 곳.
수천 마리의 고슴도치들이 등을 맞대고,
겹겹이 포개어 잠들어 있었다.
한 마리의 숨이 깊어질 때,
어디선가 나뭇잎 하나가 떨어졌다.
또 다른 숨이 얕아질 때,
땅 밑에서 뿌리 하나가 뻗어 나갔다.
가시 사이사이에 세월 묵은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여름에는 진초록으로, 겨울에는 은빛으로.
그 위로 흘러내린 빗물이 마르며 남긴 하얀 자국들.
등 위에는 하나씩, 둥근 달걀이 놓여 있었다.
달걀은 안개 낀 새벽처럼 희뿌옇게 빛났다.
얇은 껍질 안쪽,
무언가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고슴도치의 등에 있는 달걀.
그 표면에 숨결이 그은 선이 나타났다.
그 틈에서 최초의 망설임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꽃도 아니었고,
물고기도 아니었다.
아직 이름 없는 것.
완전한 무음 속에서
그 숲을 걷는 아이가 있었다.
손에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고,
그 안에는 자갈밭에서 주워온 돌들이 담겨 있었다.
아이는 그것들을 '말'이라 불렀다.
발걸음은 낙엽 위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은 걸음으로.
계절이 지나며 조금씩 넓어진 보폭으로.
첫눈이 내린 날도.
비가 숲을 두드리는 날도.
달걀 곁에 조용히 앉은 아이가 바구니를 기울였다.
돌들이 굴러 나와 고슴도치들 사이로 흩어졌다.
하나씩, 달걀 주위에 놓였다.
동그라미를 그리듯, 별자리를 그리듯.
아이는 달걀 옆에
가장 매끄러운 돌을 놓았다.
손바닥으로 한참 데운 것.
다음 날, 그 자리에
조금 더 작은 돌을 가져왔다.
한 번은, 아이가 가장 작은 달걀을 품에 안았다.
집으로 가져가려 몇 걸음을 걸었다가,
문득 돌아섰다.
달걀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
껍질에서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이의 것인지, 안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온기.
손끝의 그것만 남기고, 아이는 물러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낮고 느린 노래를 불렀다.
가사도 없고, 선율도 분명치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숲의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나뭇잎들이 바람도 없이 살짝 떨렸다.
이끼에서 희미한 습기 냄새가 올라왔다.
톡.
아이가 숨을 멈췄다.
톡, 톡.
달걀 속에서 미세한 소리가 시작되었다.
어떤 것은 속삭이는 듯 떨렸다.
어떤 것은 완전히 고요했다.
처음 왔을 때, 아이의 바구니에는
열두 개의 돌이 들어 있었다.
이듬해 봄, 바구니는 비어 있었다.
돌들은 이미 숲 곳곳에
제자리를 찾아가 있었다.
그 여름, 아이는 새로운 돌을 주웠다.
투명한 석영.
아직 발화되지 않은 말들을 위한 자리.
어느 날,
하나의 달걀이 안에서부터 빛나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껍질이 조금씩 투명해졌다.
물처럼, 공기처럼, 빛처럼.
그 안에서 작은 날개가 펼쳐졌다.
처음엔 그림자만 보였다.
그 그림자가 움직일 때마다
달걀 표면에 무지갯빛 물결이 일었다.
아이는 숨을 멈췄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달걀 속 생명과 아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는 앞으로 다가서려다,
문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이 이상한 생명들이 언젠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꽃이든, 물고기든, 날개이든, 또 다른 아이이든.
숲은 그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탄생 직전의 순간들로 가득했다.
그 순간들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아이를 조금씩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다시, 완전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숲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잠 속에서,
무언가 깨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꿈의 숨결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