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멈춘 그 해, 나는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

코로나가 사람 살렸네요

by velopenspirits
코로나가 사람 살렸네요.


상담사가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어쩐지 웃을 수 없었다.

수많은 생명을, 삶의 계획을, 사람과의 만남을 앗아간 질병.

그런데 오히려 살 수 있었다니.


코로나 이전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합격을 한 이후에는 미국 대학원 진학을 위해 토플 학원을 다니고,

지원 요건들을 하나씩 맞추느라 또 시간을 보냈다.

뉴욕의 한 대학원과는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고 장학금 이야기도 오갔다.

이제 지원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 게 멈췄다. 유학도, 계획도, 기대도.


그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안타까워했다.

말끝마다 아깝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유학 실패라는 결말만 보고 안타깝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했다.


“사실 난 회계사도, 뉴욕도, 대학원도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어."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건 바로 인생 리셋이었어.”

지금까지의 삶을 종료하고,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새로 태어나는 나.

막연한 그 모습이 긴 수험 기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합격 전부터 조금은 달라진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공부를 통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집과 회사가 멀다는 핑계로 독립을 감행했고,

부모님께는 공부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통보만 남긴 채 짐을 쌌다.

그건 사실 독립이라기보단 탈출이었다.

엄마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해야 했던 매일 아침, 술 냄새로 채워진 저녁.

그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갔다.


이삿날, 작은 단칸방에 어질러진 짐 속에 누워 혼자 맞는 밤의 낯섦을 만끽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어두운 집, 켜지지 않은 불, 가만히 누운 채 느끼는 적막.

아침에 두고 간 물건들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집.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몰입할 수 있었다.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그 속에서 살아있다고 느꼈다.


현실이 너무 버거울 때, 차라리 더 고된 일에 빠져서 현실을 잊는 그 이상한 평화,

그건 바로 공부였다.

수면 부족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압박이

오히려 즐거운 몰입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당시의 나는 탈진해 있었다.

영어 원서를 읽고 차변대변을 맞추는 시간이 더 평온하게 느껴졌던 것,

그건 공부가 좋아서라기보단 내 삶이 그만큼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반증이었다.


어느 새벽, 공부를 하다 고개를 드니 창밖에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 두 시간 뒤에 출근해야 하네. 난 왜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곧 그 생각을 덮고 계산기를 다시 들었다.

내게는 그 자조적인 질문에 대한 답보다 문제지에 있는 정답이 더 다뤄지기 쉬운 것이었고,

감정보다 숫자가 더 나를 이해해 주는 언어 같았다.

왜 이 길을 가는지 고민하기보다, 그 길을 피가 나도록 걷는 편이 덜 아팠다.






상담사는 내게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라는 방어기제를 쓴다고 했다.

감정을 직접 느끼는 대신 머리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습관.

나는 그 말을 듣고 대답했다.

“저는 주지화 쓰는 게 좋은데요? 불안한 만큼 뭔가를 더 알게 되는 거잖아요.”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우등생이었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안했던 환경과 단절되어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공부는 좋은 핑계였다.

거실에서 부모님의 언성이 들릴 때면 혼자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교과서를 폈다.

상담을 시작했을 때도, 정신과 약을 복용할 때도, 나는 늘 관련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다.

심리검사지를 스스로 해석할 정도였다.


나는 그걸 자랑스러워했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내 방식이 너무 한 가지에 치우쳐 있다는 걸.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먼저 이해부터 하려 했고, 설명이 안 되면 미해결처럼 느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묻는 감각은 점점 무뎌졌다.

불안하거나 공허할 때 항상 뭔가를 공부했다.

무언가를 알아가는 건 그나마 다른 방어기제에 비해 건강한 방식이었고 나를 지켜줬다.

하지만 지식이 쌓여갈수록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은 부족했다.


만약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뉴욕에 갔을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불안함에 맞서고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적응과 일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성과를 내고 새로운 역할을 해내며 살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었을까?

결국 다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회의감에 휩싸여,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또 어디론가 떠났을 것이다.






그날의 상담 이후,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뭘 해내는 게 어렵다지만 나에게는 멈추는 일이 훨씬 더 힘들었다.

책을 덮고, 운동을 줄이고, 유튜브에서 정보를 찾지 않기.

그 모든 것이 극기훈련이었다.


그 시기에 유일하게 시도한 건 명상이었다.

하루 10분, 가만히 앉아 생각을 비우는 연습.

어떤 날은 떠오르는 생각을 세어보았다.

저녁 메뉴, 내일의 일정, 짜증 나는 사람, 미뤄둔 설거지…

고작 10분 안에 무려 아홉 가지 생각이 흘러갔다.

그때 알았다.

생각도 감정도 그냥 흘러간다는 걸.

그리고 그중 어떤 건 사라지고, 어떤 건 더 선명해진다는 것도.


코로나로 많은 걸 빼앗겼다.

사람들을, 계획을, 만남을, 가능성을.

하지만 그 역병이 나에게는 유일하게 멈춤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그 멈춤 안에서 나는 내 삶의 방식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미국 유학으로는 불가능했지만

진심 어린 마음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인생이 리셋되었다.


“코로나가 사람 살렸네요.”

그 말은 잔인하고도 정확했다.
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을 앗아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시기에 살 수 있었다.

모두가 숨을 참던 시절, 나는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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