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상담실보다 로또

치유 대신 당첨을 바랐던 어떤 토요일

by velopenspirits

상담을 그만두고 싶었다.

초반에는 상담실에 가는 버스에서 설렘을 느끼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 길이 월요일 출근길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상담사에게 그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아지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나에 대해 알기는커녕, 우울감과 자기 연민은 더 깊어져만 갔다.

오히려 상담을 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처럼 그저 지나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돈줄이 떨어져 나가서 계속하라는 거 아니야?’

'이 사람이 무능한 건 아닐까?'

상담사에 대한 의심도 떠올랐다.

상담 때문에 더 나빠진 거 같아서 상담과 상담사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분명히 처음에는 상담비용은 내 마음을 위한 값진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와닿는 변화가 없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이 돈이면 여행을 갈 수 있을 텐데.'

'이 돈이면 가방을 살 수 있을 텐데’

라며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매 주말 다른 약속도 잡지 못하고 상담을 가는 것도 싫었다.

밤새서 술이나 마시고 늦잠이나 자고 싶은데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상담실까지 가는 길이 귀찮게만 여겨졌다.






상담실 앞 로또명당에는 ‘1등 5회 당첨’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평소에는 복권 같은 건 사지 않던 나지만 상담이 끝나고는 항상 그 복권소에 들러 만 원어치 로또를 샀다.

상담은 토요일 오전, 복권 추첨은 토요일 저녁이니 시간도 딱 좋았다.

‘로또가 되면 내가 가진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라며 당첨을 간절히 빌었다.


상담은 추상적이며 효과는 오랜 기간 걸쳐서 나타난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건강한 식단보다는 영양제, 운동보다는 위고비와 같은 지름길을 원했고,

상담보다 돈이 훨씬 더 확실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만 같았다.

상담비 지불은 손해만 나는 투자 같았다.


돈이면 다 해결될 거 같냐는 상담사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돈이 많다면, 사람을 고용해서 밖을 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에게 돈은 그런 의미였다.

예쁜 신발을 갖기 위함이 아니라 두 발로 걷고 싶다는 인간의 당연한 소망.

욕심과 사치가 아닌 그저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였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에 상담사는 다그치듯 말했다.

"상담을 그만두는 건 자유예요. 제가 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죠."

"일주일에 한 번 자기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슬프다면,

그동안 자기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는 뜻 아닐까요?"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주고 도닥여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다음 시간에 내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상담사는 마지막을 암시하는 말도 했다.

“자신의 인생을 사세요."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를 대신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자립해서 행복해지세요.”


좋은 말이지만 그땐 다 듣기 싫었다.

자기감정을 돌보라는 말, 자신의 인생을 살라는 말,

상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듣는 모든 말들은 나에게 진정으로 와닿지 않았다.

감정을 돌보라 했지만, 현실의 고지서 앞에서 마음에 귀 기울이는 일은

마치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산을 사는 대신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같았다.

내가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를 보살피기 이전에 나를 갉아먹는 것들이 마음을 더 이상 침범하지 않도록

있는 힘껏 막아서는 일뿐이었다.






상담은 늘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면 책임, 돈, 일 같은 거친 단어가 나를 위협했다.

상담실 안에서 했던 이야기는 그럴싸했지만 현실은 가혹한 생존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은 상담실에 가는 날보다 차라리 로또 사는 날에 가까웠다.

상담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보다 로또 번호를 확인할 때의 진지함이 더 간절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깊은 허무 속으로 끌어내렸다.

로또 번호를 하나 둘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외쳤다.


나는 그저 땅을 내딛고 싶을 뿐이라고.

아니, 기어서라도 살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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