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도 별점도 없이

그저 나를 믿었다

by velopenspirits

그저감각을 따랐다

상담은 거의 혼자 말하는 자리다.

내가 말하고, 내가 꺼내고, 내가 돌아보는 시간.

상담사의 말은 5%쯤, 나머지 95%는 나의 독백에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 5% 안에서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상담 관계에서 인간적인 장력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학력, 자격증, 상담기법 등을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을 하려 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 끝에

외적인 조건은 상담사 선택에 있어 작은 부분에 불가하다는 걸 알았다.

마치 학력, 직업, 연봉만으로 친구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 상담사를 만나보았는데

그중 최악은 가족센터에서 만난 상담사였다.

구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 프로그램에서 한 중년 여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 첫 시간에는 보통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나이, 직업, 학력, 연애나 결혼 상태, 가족 관계 등.

나에 대해 듣자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똑똑하고, 직업 탄탄하고, 이쁘고 늘씬하고… 가족 문제만 없으면 어디 소개하기 딱 좋은데 아쉽네.”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알만 좌우로 굴렸다.

위로였을까? 농담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솔직한 평가였던 걸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잘 알고 있었지만 콤플렉스를 상담사의 입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그것도 아무런 심리적 보호장치가 없는 채로.

상담사는 나를 상처 입은 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결혼시장에 내놓은 상품으로 바라봤다.

어떤 상품이었을까? 반품제품?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 아니면 악성재고?

이때의 나는 상담실에서 그 누구보다 인간이고 싶었다.


회사 일이 힘들다고 말했을 땐

“그래도 꾹 참고 다녀야지, 밖은 더 전쟁터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 정도가 심리상담이라면 그냥 어디 동네 아주머니랑 해도 되겠다고.

그래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상담이니 기본은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상담은 전문성도, 공감도 없이 내 마음에 상처만 남겼다.






돌아보면 상담사라는 타이틀에 너무 많은 걸 양보하고 있었다.

‘전문가니까 이게 맞는 거겠지’ 하며 넘겼던 말들이

사실은 내 마음을 더 무디게 만들고 있었던 거다.

상담사라는 명칭에 가려 너무 많은 걸 받아들이지 않아도 됐었다.

상담사라고 해서 반드시 공감능력 있고,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상담사라는 권위는 사람의 마음을 더 거칠게 흔드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의 말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면, 그건 상담이 아니다.


그 이후에는 정말 신중하게 상담사를 찾았다.

내 돈을 들여 만나는 사람이기에 학력과 경력, 상담기법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그렇게 정신분석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상담사를 만나 꽤 오래 상담을 이어갔다.

그녀는 상담심리학으로 유명한 대학에서 석박사를 했고 자격과 경력도 충분했다.


그렇게 모든 조건을 갖춘 듯한 상담사에게서도 한 순간 인간적인 결핍을 목격했다.

어느 날, 약속된 시간에 상담사가 나타나지 않아 의아하던 참에 복도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한참이 지나 들어온 상담사에게 지인을 만나신 거냐 물었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어서 알려줬다고 대답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정제된 목소리톤과 일관된 표정만 겪어온 나는

약속을 잊을 정도로 낯선 남자에게 집중하고, 밝은 모습의 그녀가 낯설었다.

나는 그건 어떤 결핍이라 생각했다.

늦은 그녀를 비전문가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대신 오히려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날의 그녀는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심이 절실한 사람 같았다.






마지막 상담사는 전국민 마음투자사업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예전 무료 상담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망설였지만,

여러 상담사를 거쳤기에 이번엔 잘 구별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 상담사는 인간중심상담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방식은 내담자의 말을 깊이 경청하고 진심 어린 반응을 주는,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접근이었다.

특별한 해석이나 복잡한 이론 없이, 오직 성실하게 듣고 반응하는 방식.

해주는 말은 단순했기에 오히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말들을 소중히 담아 듣고, 곱씹고,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라나게 했다.

상담이 끝난 뒤에도 그 말들로 한 주를 살아냈다.


세 상담사의 차이를 누가 더 좋은 학력과 누가 더 긴 경력을 가졌는지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지막 상담사와의 시간이 더 짧았음에도 더 깊이 있는 시간이라 느낀 이유는

두 번째 상담을 통해 내면의 체력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서운하고, 삐지고, 안쓰럽고, 미안해하며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랑의 진폭이 큰 치기 어린 연애를 여러 번 거친 후에야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지난 상담사들과 맺었던 관계가 나를 더 깊게 만들었다.

그런 후의 나는 더 잘 듣고, 더 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상담은 매우 깊은 인간관계를 압축해 경험하는 자리다.

부모보다도, 연인보다도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일 수 있다.

상담사의 학력이나 자격, 상담기법도 중요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정서적 합이다.


누군가는 지각을 한 상담사에게 컴플레인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단순한 말을 해주는 상담사에게

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느냐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늦은 만큼 웃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짧은 말을 힘 있는 언어라고 여기기도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범위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 사람과 내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내 직감이 편안한지 불편한지를 가장 먼저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담은 전문적인 처치 이전에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라면 망설이지 말고 나와도 된다.

상담이라는 건 상담자와 내담자, 단 둘만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외부에선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상담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내담자뿐이다.

상담은 그 누구의 후기도 별점도 없다.


상담사를 만난다는 건

나를 보듬고, 달래고, 때로는 싸우고, 물리치는

긴긴 여정을 함께할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이다.

상담사를 만났을 때 스치는 그 감각, 그건 꽤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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