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까지 가는 길은 막막했다

상담실 문을 열기 전의 고민들

by velopenspirits

처음으로 상담실을 찾았던 건 십 년 전이다.

당시의 고민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상담실을 찾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땐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상담센터나 앱 기반 심리상담이 많지 않았다.

건물 한편에서 조용히 운영하는 작은 개인 상담실이 주였다.

그 시절, 상담센터와 상담사를 찾는 과정은 단순했다.
네이버에 ‘심리상담센터’를 검색하고, 회사 근처로 후보군을 추려

홈페이지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십 년 후에 다시 상담을 찾은 과정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리상담이라는 분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밀스럽고 폐쇄적이었다.

유튜브나 블로그, 브런치를 뒤져보면 상담사의 글은 많았다.

하지만 내담자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비밀을 지켜야 하고,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펼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네이버를 켰다. 그리고 또 연동된 웹페이지를 클릭했다.

화면은 여전히 낡아 보였다.
촌스러운 글씨체와 마지막 업데이트가 족히 5년은 되어 보이는 메인 화면,

답답해 보이는 상담사의 증명사진까지도 그대로였다.
문자나 이메일로 문의를 남기면 한참 뒤에야 답장이 오는 아날로그식 운영.

순간, ‘아, 상담사들은 정말 상담만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다.


상담사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비슷한 자격증, 거기서 거기 같은 대학 상담소와 지역 상담센터 경력들을 내세웠다.

비전문가가 보기엔 뭐가 좋은 건지, 어디가 더 나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 상담사들을 찾을 수도 없었다.
방송에 나오는 오은영 박사 같은 이름은 나와는 너무 멀었다.
그런 사람들은 만날 수도 없고, 비용 또한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결정 하나에 내 마음의 미래가 달린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상담사 선택은 한정된 숫자 속에서 감으로 찍는 로또 번호였다.


결국 내가 기댄 건 관상이었다.

따뜻해 보이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이 유일한 단서였다.

예쁘고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은 다 천사인 줄 알았던 어린아이가 되어,

내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착한 얼굴을 찾고 있었다.


상담사들이 연예인도 아니고, 예쁘고 멋진 외모를 자랑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만나면 사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 해상도 떨어지는 작은 사진은

감으로라도 사람을 짚어낼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다.

선택의 순간, 전문성보다도 인간적인 연결고리가 더 힘을 발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선택한 상담실,

회사 근처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는 상담실이었다.

마주한 상담사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사이트에 있는 사진은 한참 전에 찍은 사진이었는지 나이는 좀 더 들어 보였고,

사진 속 푸근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조금 예민한 기운이 들었다.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과 안경 너머의 눈이 나를 날카롭게 꿰뚫어 본다는 느낌도 들었다.

기대와는 조금 달랐지만, 다시 상담센터를 찾기도 귀찮았고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다.

일단 몇 번은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 상담사와 회기를 이어갔다.

복권은 긁자마자 당첨여부를 알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






상담은 마음의 문제를 다루지만 그전에 현실적인 장벽에 먼저 부딪힌다.

사람들이 상담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부담이다.
2025년 시세는 1급 상담사는 13만 원, 2급은 10만 원 정도다.
그것도 딱 50분에.


첫 시간, 상담사로부터 주 2회, 3년 정도를 권유받았다.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계산기가 켜졌다.

주 2회면 한 달에 80만 원...
1년에 960만 원...
3년이면… 2,880만 원...???


그 순간의 솔직한 생각.
‘내가 호구인가?’
‘이 사람이 날 등쳐먹으려는 건가?’
‘아니면 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건가?’
‘그냥 여행이나 다니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나에게 맞는 상담사와 올바른 과정을 밟는다면 상담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 돈을 계속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결국 나는 권고대로 주 2회가 아니라, 주 1회로 하기로 했다.
상담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 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간 상담인데,

오히려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또 다른 불편함이 생긴다면 그건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횟수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 만난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어디 나가서 커피 마시고, 쇼핑하고, 저녁 먹고, 술 마시면 최소한 10만 원은 쓰지 않을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주문하는 배달음식을 줄여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일회성으로 날아가는 도파민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시간에 돈을 쓰기로 했다.


상담을 받으려고 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추가로 일을 하면 더 스트레스받을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그 사람은 육체적인 피곤함을 무릅쓰고 정신적인 평온함을 찾는 사람이었다.

상담은 결국 나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
가족들, 친구들에게는 가끔 쏘면서, 쓸데없는 옷과 가방은 잘도 사면서,
왜 내 마음을 돌보는 데에는 그렇게 인색했을까.


사람마다 고민의 깊이나 강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몇 번의 상담만으로도 충분히 가벼워질 수 있고, 누군가는 오래 붙들어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사이의 문제, 회사 스트레스 같은 단발성 문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굳이 너무 많은 부담이 되는 상담만이 정답은 아니다.


상담은 멀리서 보면 막연한 환상 같이 느껴진다.

심리상담이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데는 세련된 홈페이지나 첨단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상담사를 찾고, 돈을 지불하고, 정말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깊은 모험이기 때문이다.

돈을 허공에 날릴지, 아니면 해묵은 고민을 속 시원히 날려버릴지.

밥 한 끼, 옷 한 벌 값으로 치르는 작은 모험.

그 모험이 반짝이는 물건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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