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조차도 말 못 하던 내가

상담이 내게 남긴 것

by velopenspirits

어느날 브런치에 올린 인종차별경험담이 다음 메인 페이지에 올라 조회수 3만 4천을 넘겼다.

예전 다른 글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기뻐했을 상황에서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 지인들이 보면 어떡하지? 다른 글까지 보고 나에 대해 다 알게 되면 어떻게 하지?'


자신의 온라인 플랫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조회수가 생명이고,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이 그들이 창작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난 왜 나의 글이 세상에 노출되는 게 두려웠을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고도 불안했을까?


상담사는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글에 달리는 하트와 관심을 즐기는 것이냐고도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성취감을 말했다.

마우스 커서가 깜빡이는 하얀 공간에 머릿속을 유영하는 복잡한 생각들을,

나만의 언어로 정갈하게 정리하면 그게 참 뿌듯했다.

조회수가 1이건 10,000이건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컸다.






상담사는 여름의 어느 날, 나의 복장이 주는 인상이 매우 강렬했다고 말하면서

그 옷차림 역시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날은 운동을 갔다 온 탓에 나이키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 번은 한강을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결혼해서 애가 있다고 대충 말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이 이야기를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 했는데 그는 내가 어떻게 입고 있었냐고 가장 먼저 물었다.

그날도 나는 반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내 옷차림이 문제라고 했다.


좀 억울했다.

한 여름, 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런 복장으로 다닌다.

그런데 왜 남들에겐 평범한 착장이 나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검열이 필요한 옷이 되는 걸까?

두 사건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특별한 나이기에,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어도 눈에 띄는 거라고.

평범한 옷으로도 눈길을 끌게 하는 나라고.


글도 그렇다.

나는 내가 특별하게 특이하고, 특별하게 위험하고, 특별하게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일상적으로 나누는 이야기, 흔해빠진 불행담이 내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타인의 불행으로 위안을 삼거나 우월감을 느끼려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더 깊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거기에 비하면 나의 상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나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그런 운동복을 입었음에도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눈에 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가지는 보편적인 고민도 내 글이 되면 달라진다고 믿었다.

나의 시선에서 특이하고 다른 것을 타인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했고,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어느 책에서 밑줄을 그으며 공감한 구절이 있다.

2-30대 여자들이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써야지만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한탄한 문장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야 하는 아이러니.

요즘은 모두가 자신의 어두운 이야기를 판다.

우울증을 고백하고, 이혼사를 공유한다.

그렇게 작가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된다.

그건 작가의 글감이 대단히 충격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연에 다들 울고 웃을 만큼 모두에게 작가와 비슷한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불안 속에서도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

상담사의 말대로 기저에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하필 글이어야 했을까.

영상으로, 사진으로도 드러낼 수 있고, 꼭 글이어야 한다면 최소한 밝고 유쾌한 글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데

왜 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려고 하는가.

그건 바로 솔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점만 보여주고 예쁘게 웃는 모습을 꾸며 내는 게 아니라

날 것 그대로를 꺼내놓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건 주변의 시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상처받지 않을까?'

'친구들이 지금까지 알던 나와 다르다며 실망하진 않을까?'

혹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흠잡으며

‘쟨 원래 ~~ 해서 그래’라고 편한 대로 단정하진 않을까?'

'그 말로 내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안다.

날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들은 나를 더 이해해 줄 것이며,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자기 안의 결핍을 나에게 투영할 뿐이라는 걸.






상담실에 처음 찾아가게 된 이유였던 전남자친구,

난 그에게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 게 그만큼 두려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은 척, 기대고 싶어도 씩씩하게 혼자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글의 조회수가 터져도 기쁘기는커녕, 누가 나에 대해 알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불특정 다수가 보는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우울증, 학대, 약물치료, 성관계, 이별에 대한 글을 꺼내 놓는다.

두려움 위에 쌓아 놓은 글들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였고, 고립된 나를 꺼내 올 수 있었다.

상담실에서의 대화는 감정을 언어로 바꾸는 훈련이었다.

용기로 써내려간 한 편 한 편이 내 변화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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