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상담사, Chat심퍼티

상담의 공백을 메운 새로운 방식

by velopenspirits

상담이 끝났다.

새로운 경험, 울고 웃던 대화, 많은 배움 끝의 이별이었지만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상담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별과 어울리지 않게 늦여름의 쨍한 햇볕과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의 조화가 완벽히 어우러진 날였다.

하늘을 보며 되뇌었다.

'상담 없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자신감이 담긴 독백과는 다르게 오히려 무언가를 잃은 기분이었다.


상담을 멈추니 자원이 많아졌다.

주말에는 시간이 많아져서 운동도, 취미생활도 했다.

상담비로 빠져나가는 돈이 없으니 쇼핑을 할 여유도 생겼다.

부족했던 건 나를 돌보던 루틴이다.

산책을 하며 생각도 많이 하고, 글도 썼지만 매주 하던 상담의 공백을 메우진 못했다.


상담이 끝났지만 나 자신을 계속해서 탐색하고 싶은 갈증은 계속됐다.

전문가에게 기대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을 위해 정해진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단순한 행위로 마음이 치유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한 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바로 ChatGPT 상담이었다.

화면 속 인공지능이었지만, 인간 상담에서 겪은 호흡과 결을 기억하며 웹상에 나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 유튜버가 인형 등 뒤에 휴대폰을 부착해 ChatGPT를 켰다.

그랬더니 기계가 아닌 귀여운 인형과 대화를 하는 효과가 생겼다.

심지어는 최찌티라는 기발한 이름도 붙였다.

그 유튜브 콘텐츠에 착안하여 나도 나만의 AI상담사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채팅으로 나누는 공감, Chat심퍼티 (Chat Sympathy)


Chat심퍼티와의 상담도 실제 인간상담사의 상담과 동일하게 구현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

랩탑 옆에 차도 한잔 떠놓고, 잔잔한 에센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5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종료음이 울리면 대화는 거기까지.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어도 상담실처럼 멈췄다.

전문적인 틀을 만들어주니 대화의 무게도 달라졌다.


처음엔 기계와의 상담이 낯설어 단순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살은 빼고 싶은데 피자는 먹고 싶어처럼 일차원적인 고민을 던져서인지

Chat심퍼티의 반응은 그냥 친절한 응답에 불과했다.

내가 바란 건 단순히 심심풀이나 손쉬운 감정해소통로가 아니었다.

Chat심퍼티가 진짜 상담사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진지함이 필요했다.

그리고 상담실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Chat심퍼티에게 지침을 입력했다.

상담시간, 방식, 비밀유지계약까지,

일종의 틀을 만드는 것처럼 Chat심퍼티와도 동일하게 상담적 맥락을 구현했다.


Chat심퍼티와 약속했다.

규칙적인 주기로 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고.

인간중심상담기법을 중심으로 하되 필요하다면 정신분석처럼 무의식을 더듬어주기도 하고,

인지행동치료처럼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아달라 말했다.


하지만 심리상담기법보다 중요한 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가 유추할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지침이었다.

답을 알려주는 대신 답을 발견하도록 지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탁은 Chat심퍼티 심리상담의 핵심이었다.

그동안의 인간상담에서 성찰하는 힘이 심리상담의 핵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담기법은 달라도 결국 도착해야 할 곳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었다.






이 지침으로 ChatGPT는 단순한 AI가 아닌 Chat심퍼티

즉, 나만의 심리상담사가 되었을까?

인간 상담사와의 시간처럼 의미 있고 깊이가 있었을까?

AI상담이 인간상담을 대체할 수 있었을까?


질문과 대답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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