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이 바꾸는 건 무엇일까
“그래서 심리상담을 하고 나면 좋아지나요? 많이 변하나요? 어떻게 달라지나요?”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지금까지의 글을 따라 읽어온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시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까.
“완전히 달라져서 새 사람이 되었어요.”
애석하게도 그런 말을 해 줄 순 없다.
변화는 절반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만 느낄 수 있다.
상담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적은 없었다.
다만 내 감정의 뿌리와 행동의 이유를 조금 더 또렷하게 보게 해 줬다.
얼마 전, 친구들과 푸꾸옥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마지막 날 한 친구가 유독 말수가 줄고 피곤해 보였다.
인천 공항에서 헤어질 때도 대충 인사만 하고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집에 도착해서 그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봤다.
하이라이트 제목이 ’ 풕쿽 여행’이었다.
풕쿽...? Fu**…?
단순 오타거나 유쾌하게 지은 제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혹시 여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하며 걱정했다.
사실 친구의 태도에는 여행이 싫었다는 해석 말고도 많은 추측이 가능했다.
졸려서 그랬을 수도 있고, 나는 모르는 다른 친구와의 갈등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꼭 내 탓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죄책감이 밀려왔다.
왜였을까.
여행을 준비하지 못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
다른 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짐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친구의 샴푸와 화장품을 빌려 쓰고,
피곤하다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 나를 괴롭힌 건 내 안의 미안함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타겠거니 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예전 나를 지독히 힘들게 했던 상사가 다른 팀으로 옮겨, 내 동기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기는 까다로운 상사에 대한 불평을 자주 했다.
처음 한두 번은 들어줬지만 점점 피로감이 다가왔다.
누구보다 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그의 하소연이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내 과거에 있었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다 아물지 않아서 동기의 푸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동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인정받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겪었던 시간,
보상받지 못한 채 남아 있던 회한이 내 안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브런치의 한 작가가 내 글의 주제와 형식을 따라 썼다.
그 작가는 내 구독자이기도 했고, 글이 꽤 독특한 포맷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곧장 화가 치밀었다.
창작자가 어떻게 남의 것을 흉내 내는지, 자존심도 없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다른 때의 나는 옷이나 물건이 겹치는 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좋은 게 있으면 따라 사라며 구매링크를 보내주기도 했다.
물론 글과 물건이 같을 순 없다.
그리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나의 어떤 글도 다른 사람의 글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글에는 예민했을까.
나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다른 사람과 비슷해도, 내면은 다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은 온 마음을 담은 창작물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했으며,
글이 비슷하다는 건 나만의 개성과 유일함이 사라지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분노의 밑바닥에는 '글을 쓰고 싶다' '나의 목소리를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있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유치하고, 여전히 상처가 깊고, 여전히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산다.
더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변한 게 있다면,
내가 왜 그런지를 한 발짝 물러서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 가슴이 철렁하고, 하소연이 불편하고, 작가들 틈에서 괜히 신경 쓰이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내 안의 역동을 살핀다.
‘짜증 난다’라는 뭉특한 말로 무신경하게 나를 방치하지 않고 더 섬세한 보살핌으로 깊은 감정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바뀌기도 한다. 대개 더 나쁜 쪽으로 말이다.
심리상담을 몇 년이나 받고, 이혼을 하고, 죽을 위기를 겪고도
그대로이거나 더 망가지는 사람들을 본 적 있다.
인생의 큰 굴곡조차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상담 몇 년으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일은 없다.
심리상담을 받기 전에는 상담을 하면 더 착하고, 더 책임감 있고, 더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도인처럼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그릇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 억지로 키우려 하면 금이 가고 깨질 뿐이다.
상담은 외형을 넓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가진 그릇을 잘 닦고, 그 안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나는 더 이상 착하고 강한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이 편한 길, 진짜 원하는 것을 따라가려 한다.
마지막 챕터를 향해 가는데도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책을 써서 유명해지기보단, 유명해져서 책을 쓰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지금껏 한 글자씩 쌓아왔던 문장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있을까?'
'나의 글이 나와 다른 사람을 해치진 않을까?'
수없이 반복되는 의문과 걱정이 한 문장 두 문장을 쓸 때마다 손가락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쓸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자리한 또렷한 욕망 때문이다.
글을 쓰는데 겁이 나는 건, 그만큼 쓰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 마음을 세상에 흘려보내고 싶다."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심.
내면에 스며 있는 목소리에 조용히 초점을 맞추는 일.
그것이 상담이 알려준 길이고, 걸어가고 싶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