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상담사는 늘 같은 질문을 했다.
"그때 그 말을 했을 때, 그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흐려진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손절장인이었다.
상대가 조금만 무례하거나 이상하게 굴면 거리를 두었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큰 에너지 낭비였다.
논리는 단순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남에게 기분 나쁠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성숙한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예의를 지켰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설득하기보다는 조용히 거리를 두는 게 더 편했다.
친구의 소개로 어떤 사람을 만났다.
첫 술자리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당황스러웠다.
물려받을 재산이 있는데 상속세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면 상속세가 없어진다고 하면서
최근 미국 국적의 남자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말의 진위는 둘째치고,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B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내가 가장 많은 속마음을 털어놓은 친구라고 자신할 정도로 특별한 친구였다.
그런데 남자 문제만 나오면 나는 종종 낯선 사람을 보는 듯했다.
그녀는 여가수 L을 욕했다.
“못생긴 게 감히 I랑 결혼을 해?”
“나는 I라면 범죄도 받아줄 수 있을 거 같아.”
I는 성매매 기소유예로 시끄러웠던 사람이었기에 나는 이 친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오래 알던 사이라고 해도 연봉을 알려주긴 좀 부담스러웠다.
해외에 사는 친구 C는 한국에 들를 때마다 내 연봉을 물었다.
그때마다
"몰라… 입에 풀칠할 만큼 벌어…"라며 불편한 듯 대답을 회피했다.
친구는 나에게
"그래도 1억은 벌지?"라고 나를 떠봤다.
1억? 1어어어어억??? 장난하나. 1억이 뉘 집 개이름인가…
1억 뒤에 붙은 ’은’이라는 조사는 그 정도 연봉은 기본이라는 뉘앙스를 주었기에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A에게는 구체적인 재산 목록과 가액을 물었다.
그리고는 '지인이 도움받은 세무사를 연결해 줄까?' 하며 물었다.
겉으로는 친절한 제안 같았지만 솔직한 마음은 그 사람을 비꼬고 싶었다.
'얼마나 대단한 재산이 있길래 그러는 거야?'
'재벌이야? 뭐 계약결혼까지 해.'
'너 진짜 세금 때문에 그 미국인에게 공들이는 거 맞아? 그냥 걔가 좋은 거 아니고?'
B에게 느낀 감정은 한심함과 실망감이었다.
'아니 아무리 I가 노래를 잘 불러도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왜 애꿎은 L한테 화풀이지?'
내심 부러움도 스쳤다.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결핍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나는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B는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이라도 좋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솔직함은 나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C에게도 맞받아쳤다.
"글쎄… 우리 회사에도 미국에서 MBA 하고 온 사람 있는데 그 사람들 연봉 이 정도 받던데?"
"그 사람들이랑 너랑 비교해 보면 대충 한국에서 얼마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조언해 주는 척했지만 나도 C를 무시하고 싶었다.
'너 탑 MBA 나왔어? 너 아이비리그 나왔어? 아니잖아. 그럼 너도 1억 못 받아'라며 말이다.
동시에
'연봉 1억은 한국에서는 이 정도 급이 받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1억을 못 받는 게 이상한 게 아니야'
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커리어의 전성기를 달리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허드렛일이나 하는 나에 대한 열등감도 한몫했다.
순간순간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것이 짜증 난다, 싫다, 얘가 왜 이러지 정도의 얕은 심리였지
그 밑에 어떤 세세한 마음이 있었는지, 어떤 구체적인 결핍을 건드렸는지,
자세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 말을 했을 때, 그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상담사가 나에게 질문을 건넸을 때처럼,
나도 세 친구 A, B, C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그 말을 했던 세 사람의 진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혼자서 되짚어 보았다.
아마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A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해서 관계의 우위를 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서로 관점을 나누기보다는 외적인 스펙을 내세워서 인간관계를 맺어왔던 관성 때문일 수도 있다.
B의 가정사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20년이 넘게 연을 끊고 살아온 세월을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남자에 대한 비뚤어진 열망을 갖게 한 건 아닐까?
사랑받고 싶은 갈망, 버려지기 싫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C 역시 불안했을 거다.
오랜 시간 외국에서 지내다 귀국을 앞두고 걱정되었을 것이다.
귀국 결정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숫자가 1억이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은 속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나의 상상과 추측에 불가하다.
세 사람의 진심이 어떤 건지는 알 수 없다.
정말 상속세가 걱정되고, 정말 그 가수가 좋고, 정말 내가 얼마를 버는지가 궁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무례하다, 기분 나쁘다는 말을 바로 뱉지 않게 된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사람을 한 가지 얼굴로 보지 않고, 맥락을 살펴보면 가시 돋친 말이라도 내 마음은 훨씬 덜 무너진다.
돌이켜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손절감이었다.
특히 B의 아픔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깊은 상처를 보듬지 못했다.
나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리고 용서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말 뒤에 숨어 있는 이유를 읽어내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가치 없는 사람에게 쏟는 애정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다.
오히려 맥락을 짚어보았을 때 더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더 테레사가 아니기에 모두를 품을 필요는 없다.
손절장인 자리를 완전히 놓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여전히 관계를 끊는 게 방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손절장인에서 거리두기 전문가 정도로 내려오려 한다.
그 길에는 한 박자 멈춰 상대를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여유가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든다.
단칼을 들기 전, 쉼표 하나를 먼저 꺼내며 조금씩 사람을 헤아리는 다른 방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