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에 있던 또 다른 세계
아침을 먹고 항구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언니!”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한국어.
그 주인공은 길리 여행 중에 만난 E와 J였다.
자카르타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그녀들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E와 J는 길리섬에서 스노클링을 함께 하며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전혀 스노클링에 관심이 없었다.
섬 전체가 핑크와 스카이블루가 섞인 솜사탕 같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으로 물놀이는 먼 이야기였다.
나에게 바다란 멀리서 볼 때만 평화로울 뿐, 그 안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불신의 세계였다.
하지만 작은 섬에서 밥 먹고, 산책하고, 해변에 누워만 있는 생활이 점점 길어지자
슬슬 지루해졌고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섬에 왔는데 바다에 한 번쯤 들어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스노클링을 약속한 날까지도 여전히 겁이 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바닥을 찾을 수 없는 깊은 바다,
그곳에서 의지할 건 구명조끼 하나라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첫 번째 스노클링 스폿에 도착했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E와 J에게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두 번째 스폿에서는
“언니! 저도 수영 못하는데, 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저랑 같이 가요!”라는 J의 말에
겨우 장비를 착용하고 사다리를 한 칸씩 내려갔다.
하지만 입으로 숨을 쉬는 게 어색해서 코로 숨을 들이켜버렸다.
짠 바닷물의 매운맛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곧장 다시 배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들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물과 친해지고 입으로 숨 쉬는 법을 가르쳐줬다.
내 주변을 맴돌며 정 못하겠으면 바로 배로 돌아가자고도 말해줬다.
응원에 힘입어 들어간 두 번째 스폿에서 나는 처음으로 바닷속 물고기를 보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 은빛 몸통 위에 보랏빛 줄무늬가 반짝였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실제로 본 건 아쿠아리움이나 횟집 앞 어항이 전부였는데,
눈앞에서 헤엄치는 진짜 바다 생물은 경이로웠다.
그렇게 나는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겨우 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지막 스폿에서는 바다거북이 나타났다.
E는 나에게 거북이를 보라고 계속 손짓했지만,
나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멸치 떼와 놀고 있었다.
답답했던 E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눈앞에 바다거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물고 있어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E 역시 “언니, 거 봐요. 들어오길 잘했죠?”라는 눈빛을 보냈다.
곧바로 E는 나의 손을 잡고 함께 거북이 뒤를 쫓아갔다.
바닷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니 어느 순간 빛이 사라지고, 반짝이던 물고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스노클링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거북이는 자꾸 따라오는 두 사람이 귀찮았는지 점점 속도를 내서 우리를 따돌리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집요하게 계속 뒤를 쫓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직 거북이와 함께 더 깊이, 더 멀리, 더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갔다.
해수면에서 멀어질수록 지상 동물인 인간의 오감은 약해졌다.
방향감각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오직 호흡기를 통해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E와 맞잡은 손 안의 온기뿐이었다.
거북이와 우리 둘만 남은 신비로운 세계.
시공간을 초월해 거북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장력.
바다에 있지만 우주에 있는 기분이었다.
우주를 가본 건 아니지만.
눈물과 콧물이 맺히며 울컥했다.
콧물을 훌쩍이면 코로 바닷물이 들어올 것 같아서 꾹 참았더니 눈물로 북받쳤다.
낯선 나라에서,
오늘 처음 본 사람의 손을 붙잡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누군가를 잘 믿지 못하는 내가 죽을 뻔한 기억이 있는 바다에서
타인의 손에만 의지한 채 어둠을 지나고 있다는 생경함은 생전 처음 본 바닷속 풍경보다 강렬했다.
만약 E가 내 손을 놓는다면?
나는 그대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패닉과 바다가 나를 삼켜버릴 것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았다.
그녀가 내 손을 놓지 않을 것임을.
혹여 놓친다 해도 곧 다시 붙잡아 줄 것임을.
무엇보다 어떤 순간에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무조건적인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왜 나는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무모하게 낯선 사람을 믿으면서
평범한 일상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물 밖의 나는 의심과 경계의 촉을 세우고 속임수와 위험을 가려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달랐다.
나는 아기새였다.
세상에 갓 나와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믿는 아기새.
옆에 있는 존재를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무력한 생명 말이다.
진짜 신뢰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바다에서 깨달았다.
“나는 수영을 못해.”
“나는 바다가 무서워.”
“나는 혼자 있을 수 없어.”
그 고백이야말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
세 번째 스폿에서 만난 거북이는 결국 낯선 사람의 손을 붙잡았기에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강했더라면 절대 바다거북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멸치 떼에 만족하고 보트에서 쉬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다에 뛰어든 이상 E와 J는 믿을 수밖에 없는, 믿어야만 하는 절대존재였다.
믿어야만 만날 수 있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두 사람의 배를 함께 기다려줬다.
“우리 이제 못 보는 건가요?”
이별이 아쉬웠지만 여행지의 인연은 대개 그렇게 끝난다.
자카르타에 오면 연락하라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가 그곳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닷속에서 맞잡았던 E의 손,
“언니!” 하고 나를 불러주던 J의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단순히 스노클링 이상의 것을 주었다.
두려움은 나를 잠기게 했지만, 믿음은 나를 헤엄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