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복수라는 굴레

나는 정말 착할까?

by velopenspirits

다 지긋지긋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도망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갈까?”라는 엄마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엄마가 발리까지 올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도가 나도 발리에 가고 싶다는 것임을 알기에

혼자 있었지만 온전한 자유는 느낄 수 없었다.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엄마아아~” 하며 드러누워 애교를 부릴 나이에 나는 엄마를 부르는 대신,

살금살금 다가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사랑만 받아도 모자를 어린아이에게 엄마와의 소통의 시작은 두려움과 눈치였다.

그리고 그 상처는 계속 자라났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시험을 치르는 날, 엄마의 규칙은 단순했다.

틀린 문제 수 × 10대.

단 세 문제만 틀려도 서른 대였다.

빨간 빗줄이 쫙쫙 그어진 누런 갱지 시험지를 들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면

빨간색 플라스틱 야구 방망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열 대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너무 아팠다.

울며 잘못했다고 빌어도 매는 멈추지 않았다.

백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잘못이 아님을, 어린 나는 몰랐다.

결국 내가 선택한 생존 전략은 오줌을 싸는 것이었다.

주인에게 매를 맞는 강아지처럼,

절대적인 복종과 원초적인 두려움을 보여야만 매가 멈췄다.

어린아이가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사춘기 무렵,

엄마와 거의 한 달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화해를 시도했다.

동네 꽃집에서 장미와 안개꽃을 사 왔다.

하교 후, 걸레질을 하던 엄마 앞에 조심스레 꽃을 내밀었지만, 엄마는 그것을 바닥에 던졌다.

고민 끝에 내민 제스처가 무참히 거절당했을 때,

다시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처참히 무너졌을 때,

미안함은 분노로 바뀌었고 다시는 엄마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자식과 부모의 경계마저 무너졌다.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있으면, 엄마는 내 침대에 걸터앉아 아빠 욕을 했다.

하루의 시작은 늘 무거웠고 아빠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도 생겨났다.

방 안의 침대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내게 침대는 분노와 원망이 흘러드는 통로였다.






굵직한 에피소드들이 무색하게 나는 엄마와 잘 지낸다.

엄마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쿠팡으로 주문해 주고,

때마다 여행을 함께 하고,

본가에 갈 때면 최대한 엄마의 요구에 맞춘다.

발리에서도 분명 '이제 더 이상 엄마아빠를 걱정하지 않고 내 삶을 살겠다'라고 써놓고선,

나중에 발리에 같이 가자는 엄마의 말에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착한 딸의 시스템은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여전히 밉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시험지와 매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납득할 수 없다.

단 세 문제 틀린 게 어떻게 칭찬이 아닌 벌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지금의 엄마는 조카에게도 그때처럼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들이댈 수 있을까.

성인이 되어 과거 시험지의 상처를 엄마에게 꺼낸 적이 있다.

엄마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난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매를 맞던 방의 가구 배치까지 기억하는데, 엄마는 잊었다 했다.

기억의 상실이 아니라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회피인 것 같았다.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반동형성일 수 있어요.”

엄마를 너무 미워하지만 미운 감정을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착한 행동으로 덮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좋은 딸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는 반대의 감정을 키워가는 모순.

그 충돌은 나를 끊임없이 옥죄는 이중 구속이었다.


상담사는 또 덧붙였다.

“어쩌면 착한 복수를 하는 걸지도 몰라요.”

은연중에 엄마를 무시하면서,

나 없으면 여행도, 쿠팡주문도, 떡볶이도 못 먹지? 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요라고 했다.

어릴 때는 엄마의 매질 앞에 무력했지만,

이제는 엄마를 능가하는 사람이 되어 시혜적 돌봄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제 할 일을 알아서 잘하는 착한 딸의 모습 뒤에는

일기장에 욕을 써놓고 일부러 보라고 펼쳐두는 반항이 있었다.

틀리면 매를 맞던 아이는 아프지 않기 위해 백점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우등생이 되었고 어른이 되었다.

“자기도 모르면서, 대학도 안 나왔으면서.”

“돈 한 푼 벌어본 적도 없으면서.”

한 문제가 열 배가 되었듯

나 역시도 엄마의 작은 실수를 열 배, 스무 배 키워 무시했다.






만약 반동형성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미워하고 짜증 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면 지금보다는 덜 갑갑했을까?

착한 복수를 하지 않고 노골적인 복수를 했으면 속이 후련했을까?

차라리 겉과 속이 똑같이 착하거나, 똑같이 미워했다면 덜 힘들었을까?

왜 나는 겉으로는 좋은 딸을 연기하면서 속으로는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었을까?


그저 생존의 전략으로 표면적 착함을 택했을 뿐이다.

그때의 착함은 나약함이 아니었다.

착함은 폭력 앞에서 아이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착함은 무너저가는 가정을 붙잡는 최선이었으며,

착함은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하는 손쉬운 도피처였다.

억지 미소와 순응은 살아남기 위한 작은 기술이었다.


나는 여전히 힘들다.

감정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향한 의심도 깊어졌다.

게다가 이렇게 애쓰고 있는 나와는 달리 정작 아무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모든 일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흘러갔고, 난 아무런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실을 글로 쓰는 일조차 주저한다.

엄마는 잊었는데 딸은 기록조차 망설인다.

이 불균형이야말로 내가 풀어내야 할 오래된 굴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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