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늦은 밤 “힘들어요”라는 내담자의 연락은 가급적 받지 않는다.
당장은 위급한 상황을 무마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충동적인 감정과 싸워내야만 내면의 힘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내담자에 불과했지만 어디선가 본 상담사의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상담 시간까지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내가 미쳐 돌아간다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집에서 먹다 남은 와일드터키를 가방에 넣어 출근했다.
회사에서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면 옥상에 올라가 햇볕을 쬐고 니코틴 섞인 공기를 마셨다.
빈 회의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신경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잠시뿐이었다.
스트레스 완화에 가장 괜찮았던 방법은 점심 반주였다.
식사에 곁들인 소주 두세 잔으로 알딸딸해지면 퇴근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정말 술병을 회사에 가져가게 될 줄은 몰랐다.
서랍 속에서 술병을 꺼내든 이유는 그리 심각하지도 않았다.
메일 하나를 놓쳤지만 이내 수습했고,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작 심각한 건 그 사소한 실수 앞에서 무너진 나 자신이었다.
당시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기억력과 집중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단순한 보고도 몇 번을 확인해야 했고, 금세 머릿속이 새하얘지곤 했다.
회사사람과의 갈등으로 공황증상도 생겼다.
싫어하는 사람의 뒷모습만 봐도 숨이 막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괜히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고
점심도 굶기 일쑤였다.
몸은 늘 긴장으로 굳어 있었고,
작은 실수 하나가 곧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못나지?”
“왜 맨날 하는 일인데 이거밖에 못했지?”
자책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술을 꺼냈다.
미어캣처럼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을 때 책상 밑에서 코르크마개를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틀어 열고 술을 종이컵에 따랐다.
40도가 넘는 위스키 냄새가 새어 나갈까 봐 컵 위를 코스터로 덮고 30분에 걸쳐 조금씩 마셨다.
잔이 비워질 즈음, 취기가 돌았다.
그런데 반주에서 느끼던 가벼운 해방감은 없었다.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혹해졌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꼭 이 방법밖에 없는 걸까?'
그날 저녁 상담사에게 긴급 상담 요청 문자를 보냈다.
그 순간은 참을 수 없어서 원칙을 깨버렸다.
그렇게 밤 아홉 시에 상담실을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하다고 말하자, 상담사는 상담에서 예측 가능한 안정감을 주는 게 중요하지만,
모든 케이스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며 잘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도 들려주었다.
본인도 위급할 때는 다른 상담사에게 급하게 찾아가기도 한다고.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직업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도 정서적 소진을 겪고, 당장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무너질 수 있다니.
완벽한 전문가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다가왔다.
내 취약함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상담을 마치고 나니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들 숨에는 차가운 공기를, 날 숨에는 한숨을 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밤, 여기 오지 않았다면 나는 누구에게 오늘 일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친구? 형제? 부모? 연인? 단 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치부를 드러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는 결국 상담사 말고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돈을 내야만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건지,
돈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사야만 하는 건지,
그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짐을 챙기며 나는 문득 상담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박사 하세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혹시 싫은 거냐고 물어왔다.
공부와 상담을 병행하면 내담자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며 불안해하기도 한단다.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뇨, 선생님이 공부 열심히 하셔서 상담 더 잘해주시면 저야 좋죠.”
상담사도 아니면서 상담사의 원칙을 지키려 할 정도로 딱딱했던 내가
왜 갑자기 그런 다정한 말을 했을까.
상담도 계약관계라고 생각했다.
상담사도 천사는 아니라고, 상담사라는 직업도 생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며,
매번 긴 시곗바늘이 숫자 10을 향해 다가가면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날은 좀 달랐다.
그날 내가 살 수 있었던 건, 원칙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인간적인 온기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급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조금 덜 외로웠다.
이상하게도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그 어떤 사람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을 상담사에게는 할 수 있었다.
나를 붙잡아 준 건 거창한 조언이나 원칙이 아니었다.
내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곁에 있어준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