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버리겠다고 하니 칭찬받았다

반년 만에 처음 들은 칭찬

by velopenspirits

“그건 정말 변하기 싫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인데요.”


성찰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상담사의 대답이다.

기분이 상했다.

변하기 싫은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앉아 있을까?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이게 성찰인 건지 말해주세요.”

라며 반 년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내 얘기 쓰지 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아빠는 축하 대신 이 말을 꺼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에겐 그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고, 그 이야기들이 썩 좋은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


돌아보면 나의 근심 대부분은 아빠에서 비롯되었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물론 불안에는 순수한 나의 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든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해로운 사람과는 안 만나면 그만이고 건강도 스스로 돌볼 수 있었지만

타인, 그것도 일흔이 다 되어 가는 사람을 내가 원하는 데로 바꾼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끔 생각한다.

아빠는 가정을 이루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는 젊은 시절,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기 일을 시작했다는 건 기업가 정신 하나만 놓고 보면 존경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세 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에게는

도전이 아닌 안정, 과감함 보다는 희생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어린 시절 나는 물었다.

“왜 우리는 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거야?”

엄마는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 월급부터 줘야 그 사람들도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월급의 노예가 된 지금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땐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학원도 못 다니는데, 왜 직원 자식들은 유학을 가는 거지?”

아빠가 누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아빠는 나와 동생을 불러 앉혀 말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도 일을 하는 이유는 너희들에게 회사를 넘겨주기 위해서라고.

선생님으로, 음악가로, 작가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꿈이 바뀌는 아이의 소망은 아빠 앞에서는 다 시시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의 말은 자식을 향한 헌신이라기보다, 자신의 성취를 대물림하려는 소유욕 같았다.

‘남 밑에서 일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만든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난 출근을 했다.






사주를 보면 늘 자수성가 팔자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다.

점쟁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사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팔자를 듣기 좋게 포장하여 위로하는 말이었다는 걸.

그래도 나는 버텼다.

그리고 결심했다.

딱 1인분만 하기로.

나는 마이너스가 아닌,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사람일 뿐이라 위로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주지도 받지도 않고, 내 힘으로 끝까지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와 아빠 사이에 놓인 가시 돋친 밧줄을 더 이상 붙잡지 않기로 했다.

그 결심은 곧 아빠를 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더 이상 그의 일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기로,

더 이상 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하지 않기로,

그를 내 일부가 아닌 한 명의 타인으로 보겠다고.

이건 계산적인 태도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남이 만든 불안이 내 마음의 위태로움이 되지 않게,

원망과 미움이 내 인생을 집어삼키지 않게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가출을 하는 딸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김치에 밥을 먹던 그의 태연함,

엄마가 쓰러져도 눈하나 깜짝 안 하던 그의 이기심,

키우는 고양이가 없어져도 거실에서 가만히 티브이를 보던 그의 무관심이 만든 결과.

여러 일에도 그만하면 나도 많이 양보했다 생각했다.

내 결단은 아빠의 인과응보였다.


여행을 다녀온 날, 현관문에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온 우편물 안내서가 붙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우편물에서 단 한 번도 좋은 내용은 없었는데 또 이번엔 무슨 일일까?

즐거운 여행 후 마주친 데자뷔에 짜증은 났지만 예전처럼 심장이 덜컥이진 않았다.

'내 일이 아닌 일로 내가 다치면 나만 손해다.'

'나부터 행복하게 살아남자.'

라고 되뇌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엄마와 의절한 간호사 들레가 등장한다.

“나 엄마 버렸어요”라는 고백에 남자친구는 잘했다고 말한다.

천륜을 끊었다는 말에, 잘했다고.

드라마 속 들레의 한마디는 날 해방시켰다.

저런 말을 해도 기특하다 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안도감을 줬다.


나도 상담실에서 말했다.

“아빠를 버리려고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마치며 물었다.
“이런 게 성찰인가요?”


상담사는 반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칭찬했다.

들레의 남자친구처럼.

그러면서 왜 잘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냐고 궁금해했다.

그러면 안 될 거 같았다.

부모를 버린다는 말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될 거 같았다.


아빠를 버린다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건 정말로 의절을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를 향한 불안과 원망을 더 이상 내 어깨에 짊어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잘난 부모에게도, 못난 부모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성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땅을 딛고 서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역시 한 사람으로서의 아빠의 능력과 인생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경계의 선언이었다.


들레의 남자친구가 들레를, 상담사가 나를 칭찬한 이유는

부모를 버린다는 큰 결심을 해서가 아니었다.

불편함의 근원을 스스로 찾아낸 것,

그리고 두려움과 나를 분리해 보려는 시도가 바로 성찰이라는 점을 인정해 준 것이다.


만약 그날 내가 아빠를 버린다는 결론이 아니라

아빠를 보듬고 용서한다라는 정 반대의 결심을 했었어도 상담사는 잘했노라 했을 거다.

어떤 결론인지 보다는 생각의 끝까지 다다르는 과정,

즉, 고정관념과 싸우고 금기시되는 마음보다 내 감정을 우선시 해보고,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본심의 갈래길에서 눈 질끈 감고 한 방향을 결정해 본 경험을 그녀는 지켜본 것이다.


성찰은 배워서 하는 게 아니었다.

How to는 없었다.

끝없이 힘든 시간을 통과하며, 입 밖에 내기 힘든 말을 내뱉고,

내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오는 것.

그래서 나는 상담을 계속할 수 있었다.

아빠를 바꾸지 못하듯 세상도 내 뜻대로 다 바뀌진 않지만, 이제는 안다.

적어도 내 감정만큼은 내 힘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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