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요한이와의 배움, 그리고 성장에 대하여

by 오늘도책한잔

공부란, 시간을 들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자연스럽게 또 다른 길로 이끄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해 긴 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건,
시골로 이사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요한이와 안나를 데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직독직해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 철학자의 음성을 품은 문장을 아이와 함께 천천히 따라 읽었다.
니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요한이가 영어와 철학을 자연스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믿고 있었다.


요한이는 모든 것을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또 깊게 증명되었다.


“어머니, 고통 없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엄마가 많이 힘들어서, 네가 스스로 준비해서 학교 가야겠어.”
요한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니체 강의에서 수없이 들었던 그 문장, 그 철학,
그 모든 해석을 뛰어넘는 한 줄짜리 진실이 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한마디로,
내가 배운 모든 개념과 정의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이의 말이 남았다.


『매직트리하우스』로 시작한 영어, 해리포터로 이어지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요한이와 함께 『매직트리하우스』를 매일 한 챕터씩 읽기 시작했다.
내 속으로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있었다.
‘이 시리즈를 끝내면 영어 독해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 뒤로 요한이는 화상영어, 영자신문, News in Levels 등을 통해
조금씩 영어의 세계를 넓혀갔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요한이는 해리포터 원서를 음원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엔 늘 해리포터 오디오북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요한이가 말했다.


“엄마, 영어가 한국어처럼 바로 해석돼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영어를 ‘과목’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요한이에게 이미 ‘언어’이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문법은 재미없어도, 매일매일
하지만, 말하기와 듣기와 독해가 자연스러워질수록,
문법은 오히려 요한이에게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중학 영문법 3800제』를 하루 3~5장씩 꾸준히 풀기 시작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반복은 힘을 가졌다.
지금 요한이는 2학년 과정 문제집까지 끝냈고,
다시 한 번 복습하며 기초를 다지는 중이다.
나는 선행보다 현행을 중시하는 편이다.
지금 배우는 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영어는 체계적으로, 다른 과목은 조금 느슨하게
요한이의 영어는, 이제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었다.
원서 읽기, 화상영어, 영문법 문제집, 영자신문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한이는 책상 앞에 앉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앉으면 하나씩 해나가는 아이다.
다른 과목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국어, 사회, 과학은 주로 책을 읽으며 감을 잡고 있고
수학은 혼자 풀다가 막히면 선생님께 여쭙는다.
그리고 최근엔 사설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수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건강이 흔들리는 순간, 다시 돌아보는 마음
공부에 속도를 내고자 했던 3월.
요한이는 장염, 복통, 알레르기, 항생제 치료를 반복하며
한 달 내내 고생했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다
크게 한숨을 쉰 적이 있다.
화가 선생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무슨 걱정 있어요?”


내가 사정 이야기를 하자
그분은 조용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 키울 때 다 그래요.
너무 마음 조이지 마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요한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 지켜봐 준
한 사람의 따뜻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바다 위에서 쓰는 『노인과 바다』
5월 4일, 우리는 가족과 함께 농다리로 여행을 갔다.
5월 5일 새벽, 요한이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요한이는 자연을 좋아한다.
뛰노는 것을 좋아하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낚시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학교에서는 이제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한 시기라지만,
요한이의 세계는
아직 바다와, 자연과, 관계 속에서 숨 쉬고 있다.


멋지다. 그렇게 잘 가고 있는 거야.
중학교 2학년 요한이는
아직도 해맑고 천진난만하며, 어쩐지 조금은 아기 같다.
나는 생각한다.
이 순수하고 맑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부모의 자질보다 더 중요한 게 ‘믿음’ 일지도 모른다고.
오늘도 나는 나지막이 혼잣말한다.


“멋지다. 그렇게 잘 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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