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책한잔 박기량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시간일 수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안온함을 느낍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맨발로 산을 걸은 후 돌아와 집안일을 하는 그 시간.
고요하고 단순한 흐름 속에 숨을 쉽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프면 좀 쉬어가라”고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운동을 합니다.
몸이 무거운 날, 걷기조차 힘든 날에는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몸의 신호, 마음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타인의 말보다
살아가는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 비교 속의 열등감 때문에
붓을 들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그렸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꼭 시작하리라' 다짐했던 것이
20대 직장생활 중 실현되었고,
그때 만난 실장님은 지금까지도 제 삶의 한 귀퉁이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분이십니다.
어제 실장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후흑학』 한번 읽어봐.
나는 거기서 삶의 지혜를 얻었어.
선생님도 읽고 꼭 얘기해 줘.”
“네, 바로 읽고 독서감상문 써 올리겠습니다.”
스무 해가 훌쩍 넘은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림과 책, 그리고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로요.
오늘은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고통을 견디며 조용히 피어나는 삶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 시를 향해 간 것 같아요.
국화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시 해설 – 고통을 품은 아름다움
서정주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인이며, 이 시 「국화옆에서」는 1947년 『귀촉도』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이 시는 한 송이 국화가 피기까지 이르는 길고 고된 시간,
그리고 그 꽃을 맞이하는 화자의 감정의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국화는 흔히 절개와 인내, 고결함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이 시에서 국화 한 송이가 피어나기 위해
봄부터 여름까지 소쩍새가 울고, 천둥과 먹구름이 몰아쳤으며,
무서리까지 내려앉았다는 표현은
아름다움이 결코 쉽게 피어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국화는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 표현되며
젊음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인생의 정수로 그려집니다.
화자는 고통과 시간 속에서 피어난 이 한 송이 꽃을 보며
자신의 삶도 그렇게 흘러왔음을 자각합니다.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 마지막 구절은
누군가의 아름다움은, 다른 누군가의 깊은 수고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는 삶의 진리를 고요히 들려줍니다.
삶은 결국, 그렇게 피어나는 것
저도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고단한 하루하루가
혹시 내 삶의 국화꽃 한 송이를 피워내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림이든, 글이든,
혹은 누군가와 함께 나눈 조용한 통화 한 마디든
그것들이 다 내 삶을 조금씩 채우며
결국 언젠가는 노오란 꽃잎 하나로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아픔을 안고 걷는 우리 모두가
삶의 국화 한 송이 앞에서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저 그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이
누군가의 반복되는 하루에
한 송이 국화처럼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그 안온한 반복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지켜내고 있는 당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