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이 열렸다.
"승차 감사합니다."
"시오도메(汐留) 닛테레 타워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뒷머리가 반 이상 백발인데, 노인의 목소리는 아니다. 옆얼굴을 슬쩍 봐도 50대 정도로 보인다.
300미터쯤 직진하다가 신호에 걸린다. 아침 8시치고는 꽤나 강렬한 햇살 속에서 출근길 인파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줄지어 길을 건넌다. 어제는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맑을 것 같다.
"시바코엔(芝公園)에서 좌회전할까요?"
주행거리가 가장 짧은 경로로 가겠느냐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좌회전과 우회전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해서 신호가 많다.
"아뇨. 계속 직진해서 가나스기바시(金杉橋) 남쪽에서 좌회전, 그리고 계속 직진입니다."
운전을 해서 출근할 때, 늘 내가 가는 길로 답한다. 거리상으로는 조금 돌아가는 셈이지만, 신호가 한 번에 터지면 빠르게 갈 가능성이 높다.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택시기사와의 대화는 대개 끝이다. 휴대전화의 푸시 알람을 하나하나 오른쪽으로 밀어 지우기 시작했다. 직진신호를 받은 택시는 교차로를 지나 조금씩 속도를 높인다.
"제가, '우버'를 하는데요. 오늘 역대 가장 어린 손님을 태웠어요.. 손님 타시기 전에 미나미아자부(南麻布)에서요."
택시기사는 묻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교통 상황에 대한 잡담이나 뻔한 날씨 얘기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대꾸를 했다.
"몇 살이었는데요?"
"8살이더군요. 그 전 기록은 15살이었거든요. 큰 폭으로 갱신했죠."
나의 관심을 확인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말을 이어간다.
"우버로 부른 사람은 엄마였나 봐요. 여자 이름이었는데, 성(姓)은 외국인인 것 같았어요. 도착했다고 알림을 보내니까 웬 남자아이가 혼자 훌쩍 올라타더군요. 여자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자질이 있는 기사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일까.
"그러니까, 엄마인 듯한 여자분이 택시를 부르고, 택시에는 아들인 것 같은 아이가 탔다는 거죠?"
"네. 학교로 가는 콜이었어요. 그렇게 멀지는 않은 곳이었죠. 한 10분도 안 걸렸어요."
"엄마가 일이 있어서 아이를 택시로 등교시켰나 보네요."
"이유는 모르죠, 저야. 그런데 아이만 혼자 타니까 제가 좀 어색하더라고요. 아무튼 우버 손님 가운데 가장 어린 아이였으니까, 나이를 물었어요."
"기록 경신이니까요."
"네. 그것도 그렇고, 아이가 좀 불안해 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죠. 엄마인지, 아무튼 성(姓)이 외국인이어서 영어로 물어봤어요. How old are you? 이렇게요."
일본인 중년 남성의 영어 발음치고는 나쁘지 않다. 관심이 조금 더 늘었다.
"그랬더니 여덟 살이라고 하던가요?"
"그게, 전혀 못 알아듣더라고요. Six years old? Seven years old? 그래도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일본어로 몇 살이냐고 물었죠. 그제야 여덟 살이라고 하더군요. 뭐야, 영어 못하는 거야? 그랬더니, 못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지. 애초에 엄마(인지 모르겠지만)의 이름 만으로 영어를 할 줄 알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린 건 택시기사다.
"학교는 외국인 학교였나요? 아메리칸 스쿨이나 뭐 그런."
"그냥 평범한 공립 소학교였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야 그렇지. 기사의 침묵에서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살짝 비쳤다. 그걸 털어버리려는 듯 기사는 말을 다시 이어갔다.
"대개는요, 아빠가 아이와 같이 타고, 아이가 먼저 학교에서 내리고 아빠를 직장으로 모시는 패턴이거든요. 그런데 걘 늘 이렇게 혼자 택시로 학교에 가는지 택시 안에서도 별로 어색한 것도 없었어요. 나이 얘길 하고는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더라고요. 도착할 때까지요."
그러고 보니 '우버'를 한다는 택시를 탄 건 나도 처음이다. 택시 규제가 심해 1년 전쯤에 간신히 도쿄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버 택시, 저는 처음인데 많이 쓰나 봐요?"
"미나토구(港区)에 한해서는 콜이 많이 옵니다."
택시기사와 승객 사이의 지극히 흔한 대화로 돌아왔다. 이게 보통이지. 택시는 어느새 가나스기바시 남쪽에서 좌회전을 해 닛테레가 있는 시오도메로 쭉 뻗은 다이이치게이힌(第一京浜) 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있는 다이몬(大門) 네거리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는 게 앞유리 너머로 얼핏 보였다.
고개를 돌려 휙휙 뒤로 밀려나는 거리를 보고 있으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 바로 조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택시기사의 추측대로라면 늘 택시로 혼자 학교에 가는 것 같다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가 머릿속에서 어슴푸레하게 그려졌다. 표정까지는 상상으로도 만들 수 없었다.
"왠지, 조금 슬프네요."
택시기사의 뒤통수를 향해 이렇게 말해 보았다. 내 목소리가 그의 뒷덜미를 타고 올라가 왼쪽 귓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상상을 잠깐 했다. 마지막 공기의 파동이 꼬리를 감출 무렵, 그가 말했다.
"그렇죠. 저도 어느 쪽이냐 하면, 조금 슬프네요."
"어느 쪽이냐 하면."
"네, 어느 쪽이냐 하면."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