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망, '평전' 2제

산케이와 아사히의 결이 다른 추모

by SJ in Wonderland

어제(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응원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숨진 아베 전 총리. 최근 15년, 일본 정치의 한복판에서 총리를 두 번 역임하고 역대 최장의 재임기간이라는 기록을 세운 거물 정치인이기에 일본 사회의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3년 3개월지난 도쿄 특파원 기간의 절반을 아베 총리의 '입'만 보며 지냈던 나도 갑작스러운 속보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났다. 사건의 개요와 범인의 의도, 앞으로의 일본 정치(내일이 참의원 선거다)에 대한 전망 등을 읊는 기사는 이미 차고 넘치니, 전(前) 특파원인 나는 일종의 '아베 평전'에 해당하는 기사 두 개를 '발번역'해 공유하는 것으로 아베의 죽음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자타가 공인하는 극우 성향의 논설가인 아비루 루이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의 글.



[산케이] '천직'을 가진 드문 정치인

(글 : 아비루 루이 논설위원 겸 정치부 편집위원)


일본의 장래에 이중으로 암운이 드리워졌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은 경제정책에서도 안전보장 면에서도 역사인식 문제에서도 일본을 이끌어온 리더를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일본 사회에서 테러가 이렇게 가까운 존재였다고 하는 어두운 예감까지 들게 한다.


"굉장히 분위기가 고조돼 있었다. 어떤 후보는 밤 8시 시점에 당선이 확실해지겠지. 자민당은 꽤 높은 확률로 60의석을 확보하지 않을까."


사건 전날인 7일 밤에는 참의원 선거에 대해 아베 씨를 전화로 취재해 응원에 나선 후보의 상황을 물었다. 연일 이어진 전국 유세 행보에도 피로함을 보이지 않고 상당히 건강한 듯 보였지만 선거구에 따라서는 상대 후보의 지원자들이 '난폭해지는 일이 있다'고도 말했다.


좌파 예술가나 일부 언론들은 아베 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쓰고 보도해도 된다며 잡스러운 욕설을 내뱉어왔다. 증오를 부추기는 그들은 지금까지도 막나가는 모습을 많이 보여왔다. 범인은 일본의 일본의 앞날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며 엔진이었던 아베 씨를 퇴장시킴으로써 일본을 어디로 나아가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선거 응원에 나선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부정, 그 자체다.


아베 씨는 제1차 정권 당시 (미군) 점령하에 만들어진 교육기본법을 처음으로 개정하고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켰고, 헌법 개정을 위해 필요했지만 정비되지 않았던 국민투표법을 제정했다.


제2차 정권 이후에는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로 주가를 올려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설치하고 정부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신속화했다. 집단적 자위권의 한정적 행사를 인정하는 안전보장관련법을 성립시켰고 긴장이 높아지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응해 기밀을 누설한 공무원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는 특정비밀보호법도 만들었다.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근거도 없이 인정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의 작성과정을 검증했고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의 중요성을 설득해 미국으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관여를 이끌어냈다. 자민당이 헌법개정안에 '9조에 자위대 명기'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아베 씨의 의향이었다.


헌정 사상 최장인 통산 3188일의 재임기간을 마친 뒤에도 반격능력(적기지공격능력)의 보유와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 방위예산의 증액 등에서 자민당 내의 논의를 리드해 왔다. 적극재정파를 이끌며 재정 규율에 경도되기 쉬운 기시다 후미오 정권을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일본의 정치와 현재는 아베 씨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축이 흔들리기 쉬운 자민당이 보수정당을 내걸 수 있었던 것도 아베 씨와 그 동지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부터 난치병으로 지정된 궤양성 대장염으로 고생하면서 두 번이나 총리에 오른 아베 씨는 때때로 막스 베버를 인용해 왔다. 이런 말이다.


"결코 굽히지 않는 인간. 어떤 사태에 직면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인간. 그런 인간 만이 정치를 '천직'으로 가진다."


그야말로 아베 씨 자신을 의미하는 걸까. 24년 전에 처음으로 그를 취재했을 때부터 아베 씨의 정치신조는 결코 변하지 않았고, 부드럽고 성실한 인품도 변하지 않았다. '천직'을 가진 드문 정치인의 돌연한 사망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음은 아사히신문 기자인 오노 고타로의 글.



[아사히] '현실주의' 요구해 온 보수..아베 씨 '적과 동지' 깊어진 골

(글 : 오노 고타로 정치부 기자)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니까. 가능성을 얼마나 현실의 것으로 만드느냐가 정치입니다.'


2013년 3월 환태평양경제연계협정(TPP) 교섭 참가를 공표할 의향을 굳힌 그날 밤, 아베 신조 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의 총리직에 다시 돌아왔지만 참의원에서는 여당이 소수인 여소야대 국회 상황.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 해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 해소를 목표로 둔 시기였다.


자민당 내에서는 TPP 참가에 대해 불만이 터져나왔다. 아베 씨는 '모두가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에 참가의사를 밝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생각했다'고 말하며 며칠 뒤 정식으로 교섭 참가를 표명했다. 참의원 선거에서는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를 전면에 내세워 승리하며 장기정권의 기반을 구축했다.


'적'으로 규정하면 엄혹했지만 '동지'로 인정하면 강한 연계감을 보여 왔다. 회식에서는 빠른 말투로 농담을 연발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 밝은 성격과 정열에 가까이에서 아베 씨를 접한 사람은 빨려들어갔다.


정치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아버지이자 외상 등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 씨의 후계자로 첫 당선. 자민당 내에서는 아버지가 이끌던 세이와카이(현재 아베파)에 들어가 비주류파가 되었다. 당시는 고치카이(현재 기시다파)와 게이세이카이(현재 모테기파의 뿌리)가 주류파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뒤에 당내 최대 파벌의 영수가 되어서도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치카이 등 '보수 본류'를 향한 라이벌 의식이 근저에 있었다.


세이와카이가 주류파가 되자 간사장, 관방장관 등을 역임. 2006년에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그 직후 건강 이상을 이유로 퇴진. 자민당은 그로부터 2년 뒤 정권을 빼앗겨 당내에서는 '전범' 취급을 받았다.


2012년 민주당 정권이 지지율을 잃는 가운데 아베씨와 서로 '동지'임을 인정하고 기대왔던 정치가와 관료들의 지원을 받아 다시 총재선거에 입후보했다. 직후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을 탈환했다.


제2차 아베 정권을 발족하면서 경제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야당 시절 아베 씨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책장에 공부 모임의 자료를 모아놓은 두꺼운 파일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이때의 자료들이 아베노믹스로 연결됐을 것이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정권 운영에서는 현실주의자(리얼리스트)의 일면을 보였다. '보수'를 자임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논리를 봉인할 때도 있었다.


2013년의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해 12월에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방문했지만 그 뒤에는 총리로서는 일절 참배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에는 위안부 문제에서 군의 관여와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한일합의'를 한국정부와 체결했다. 그러나 본심으로는 납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불만도 (밖으로) 흘리고 있었다.


주요 정책은 총리관저 주도로 이끌었다. 여섯 차례의 대형 선거에서 연승을 거두며 자민당 내부를 장악했다. '아베 1강'의 정치 구도를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해 '(처음의)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총리라는 자리에서도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베 씨가 계속 집착해 온 테마가 헌법개정이었다. 제2차 정권 발족 초기에는 '1, 2년으로는 안된다. 6년 정도 하지 않으면'이라고 말하며 장기정권을 구축해 헌법 개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욕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권이 6년을 넘으며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헌법개정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이 실현됐지만 개정에는 나서지 못했다. 결국 숙제는 이루지 못하고 2020년 여름 다시 건강이 나빠져 정권을 떠났다.


일개 의원으로 복귀해서도 핵공유론과 적극재정론 등에서 물의를 빚었지만, 엣지있는 지론을 자유롭게 논설하는 모습은 어딘가 즐거워보였다. 단, 언제나 뇌리에 있던 것은 헌법개정의 행방이었다. 이번 참의원 선거 기간 중에도 기시다 총리의 생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기시다 씨는 진심으로 헌법 개정에 나설 마음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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