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여름, 열여섯 살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의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 해가 아니어도 여름은 늘 더웠고, 학교에 가지 않을 뿐인 방학도 그리 새롭지는 않았지만 1992년은 좀 달랐다. 더운 건 여전했지만 꽤나 비일상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작은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인천의 한 공립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여름방학에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의 과학과목 학습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당시 인천시교육청은 방학 직전 산하 각 고등학교에 교육청이 주관하는 '여름 과학 특강' 개설을 알리고 학교별로 2명씩 학생을 선발해 보낼 것을 요청한다. 과학 특강이므로 당시 고교 교과과정의 과학과목-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의 심화과정을 역시 각 학교에서 차출된 교사들이 돌아가며 가르치고, 각 학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약 한 달 가까이 주 3회 정도 출석해 수업을 듣는 형태였다. 과학 특강이므로 각 학교의 과학 선생님들이 학생 추천을 담당했는데, 문제는 문과 이과를 선택하지 않은 1학년이 대상이라 학생들에게 '관심' 또는 '참여'를 강요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세상사 애매한 경우가 대개 이렇게 흘러가듯 1학년 담임교사 가운데 과학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자기 반에서 적당한 학생을 사실상 강제로 적어 내게 됐다. 우리반 담임이었던 지구과학 선생님도,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내 이름을 적어 냈다. "반장아, 너 여름에 여기 가서 공부 좀 하고 온나. 괜찮겠지?" 함께 가게 된 친구는 옆반 부반장이었고, 그 반은 생물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우리가 수업을 받게 될 곳은 맥아더 장군상으로 유명한 자유공원 근처에 있었다.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내려 지하도로 서쪽 광장을 건넌 뒤 계단을 올라오면 대한서림이라는 대형 서점이 있다. 서점을 왼쪽에 두고 자유공원 오르막길로 들어서면 왼쪽에 낮은 상가 건물들이 어깨를 대고 줄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기억나는 건 인기 연예인들의 대형 브로마이드와 유행곡의 피아노 악보를 팔던 가게와 분식집, 그리고 불량식품을 좌판에 내놓고 팔던 유원지 슈퍼마켓 같은 곳들이었다. 오른쪽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이곳을 지나쳐 자유공원을 향해 올라가면 중간에 갈림길(몇 갈래였던가?)이 나오는데, 여기서 가장 왼쪽은 홍예문을 향하고, 오른쪽은 제물포고등학교 입구로 꺾어져 내려가는 길로 연결된다. 여기서도 일단 꿋꿋이 직진하면 왼쪽으로 자유공원 경내가 시작되고 오른쪽으로는 제물포고등학교의 넓은 운동장이 있었다. 운동장은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다. 운동장이 끝나간다는 느낌이 드는(훈련 중인 야구부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곳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고 녹음이 우거진 길을 잠시 걸어가야 수업을 받는 3층 높이의 건물이 나왔다. 지금 인터넷 지도에서 찾아보면 자유공원의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과 송월장로교회, 인천기상대를 연결해서 만들어지는, 예각이 날카로운 삼각형 안쪽 어딘가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 인천시교육청이 관리하는 부속 건물들 가운데 하나였을 거라는 기억인데 이것도 어느 쪽이냐 하면 정확한 건 아니다. 건물 1층은 로비와 과학 도구 등이 진열된 전시 시설이 있었고 수업은 계단을 올라간 2층에서 진행됐다. 학교 교실 정도의 넓이의 방으로 교탁 위치에는 상당히 커다란 탁자가 있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과학실 같은 느낌으로, 물론 그보다는 쾌적한 인상이었지만 그렇다고 번쩍번쩍한 새 건물과 교실도 아니었던 것 같다.
7월 초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학교의 여름 교복을 그대로 입고 첫 수업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아갔다. 사람들로 붐비던 동인천역과, 젊은이들의 약속장소로 유명했던 대한서림 근처의 인파를 뚫고 자유공원을 향해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주변이 한적해졌다. 거의 정상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샛길은 더이상 덧칠조차 필요없을 것 같은 초록으로 가득했고, 귀가 따가워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매미소리만 가득했다. 교복 상의가 살짝 땀에 젖기 시작할 무렵 집합 장소인 건물에 도착했다. 함께 간 옆반 부반장 동익이를 제외하면 머물 장소도, 만날 사람들도 모두 처음이라 쭈삣거리면서 교실로 들어갔더니 우리처럼 자기 학교의 여름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어색한 공기 속에 앉아 있었다. 전체 인원은 스무 명 남짓 정도로 보였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선생님 한 분이 들어와 학교와 이름을 연달아 부르는 방식으로 출석을 확인했다.
그곳에서 한 달이 조금 안되는 시간 동안 받은 수업의 내용은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하지 못했던 조금 어려운 실험을 몇 가지 했고, 실험보다 훨씬 어려운 이론 공부를 내내 했다. 그때 나는 수학을 시작으로 물리, 화학 같은 이과 과목에 빠르게 흥미를 잃고 있었고, 가방 속에는 늘 대하소설이 몇 권씩 들어 있었다. 그 해 여름엔 아마도 [태백산맥]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선생님의 '추천'을 내 의지로 거부할 수 없고, '땡땡이'는 감히 생각도 못하는 소심한 학생이어서, 적어도 수업만큼은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노트에 이해도 못하는 물리 공식을 쓰고, 공식에 따라 숫자를 넣어 답을 구하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당시는 인천에 인문계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시험으로 들어가는 비평준화 학교 단 한 곳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 학교에서 추천된 두 명을 제외하고는 교실 안에서 이렇게 남녀 학생이 함께 머무는 상황이 어색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입시학원 종합반처럼 돈 내고 등록한 사람 누구나 와서 섞이는 자리가 아니라, 학교의 추천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속물스러운 안심도 더해지면서 교실 바닥에는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차곡차곡 깔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은 대부분 밖으로 드러나 반짝이거나 충돌하지 않고, 먼지가 피어오르듯 그저 공기 속에 섞여 가끔 가슴을 뛰게 하는 정도였지만, 그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챙겨 들고, 올라갔던 길을 거슬러 다시 내려왔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이라든가, 사는 동네가 같다는 이유로 금세 친해진 남학생, 또는 여학생 몇몇이 끼리끼리 동인천 어딘가로 간식을 먹으러 몰려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각자 뜨거운 햇살에 머리를 묻고 말없이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유공원을 지나 동인천역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 붙은 흙이 말라서 떨어지듯, 교실에서 느꼈던 대상없는 호기심이 서서히 흩어지는 기분이 그리 싫지 않았다. 그때 내가 즐겼던 유일한 일탈은, 동인천역 근처 어느 건물 4층의 어두컴컴한 음악감상실에 입장료 천 원을 내고 들어가 해가 질 때까지 헤비메탈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었다. 베이스 기타를 잘 치던 학교 방송반 2학년 선배의 소개로 봄에 알게된 곳이었는데, 너무 멀어서 자주 못가던 차에 과학 수업으로 1주일에 세 번 동인천을 가야 했으니 이만한 기회가 없다 싶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쨍쨍한 햇빛과 숨막히는 습기를 뚫고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면, 다 갈라져서 군데군데 솜이 튀어나오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1인용 가죽의자 20여 개가 동시상영 극장의 가장 작은 상영관만한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조심조심 구석으로 가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린 뒤 빈자리를 찾아 가는데, 화면이 잘 안보이는 기둥 근처는 대개 비어 있었다. 어두우니 남을 볼 필요도 없고, 내가 보일 걱정도 없는 공간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앉아서, 몇 번씩이나 봐서 이제는 등장인물의 모든 표정을 다 외워버린 뮤직비디오를 보고 또 보았다. 대개 너무 먼 곳에서 평생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 만든 음악과 영상이었지만, 바로 그 점이 강렬하게 마음을 잡아당겼다.
3주 정도의 과학 특강(언젠가부터 우리는 그걸 '썸머 스쿨'이라고 했다)이 끝날 무렵 함께 수업을 듣던 여자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내가 다니던 그 음악감상실을 드나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업이 끝난 뒤 바로 감상실로 향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어딘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 그곳에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눈치도 채지 못했던 것 같다. 변변한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그가 음악감상실 '동기'라는 걸 알게 된 계기는 이랬다. 특강 사이 쉬는시간에 우연히 옆을 지나가면서 본 그의 연습장 위에, 감상실 입구에서 입장료로 천 원을 내면 신청곡을 써서 DJ에게 내라고 나눠주던, 감상실 이름이 찍힌 메모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나 역시 음악감상실에 다닌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끝내 몰랐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 메모지를 보았지만 나는 끝까지 아는 척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나에게 감상실 출입을 들켰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메모지를 본 날 이후로, 감상실 소파에 깊이 파묻혀 있다가 뒷쪽에서 문이 열리며 음악소리가 잠시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감상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려 했다. 인사를 건넬 마음도, 용기도 없었지만, 그가 들어오는 걸 단 한 번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어둠에 푹 익어버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바깥은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빛으로 가득해, 내 시선에 허락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