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소년잡지의 추억
80년대 소년잡지의 구성 가운데 주목할 것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버거운 내용이 꽤 많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내용이 오히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소련이 중부 시베리아의 오지에서 가스광을 파다가 지옥의 문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공동을 발견했다든가, 이탈리아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리며 세계멸망을 예언했다든가, 4백년째 사람들에게 목격되고 있는 유럽의 '생 제르망 백작'이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한 자선파티에 참석했다든가 하는 기사는 그 진위야 어찌됐든 자기와 가족, 친구들의 작은 범위 안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세계는 이렇게 넓고 커서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런 기사들의 상당수는 당시 소년잡지를 만들던 기자들이 취재한 것이 아니었다. 매달 한두 페이지에 걸쳐 전세계의 음모론과 환상과학을 다루던 그 기사들은 대개 일본의 소년잡지에서 기사며 사진을 그대로 베껴 쓴 이른바 '무단전재' 기사였다. 음모론을 직접 취재할 여력이 없었던 당시 소년잡지 편집자들은 두툼한 일본 잡지를 보고 입맛에 맞는 기사를 뽑아 쓰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1년이나 2년 정도의 주기로 같은 기사도 반복됐을 것이고, 흥미롭거나 충격적인 기사들은 재탕에 삼탕까지 거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 이른바 '자주 본 기사'들은 대개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었다. 네스호의 괴물, 버뮤다 삼각지대, 설인 '예티', 반인반수 유인원 '사스카치'와 캐나다 삼림 속의 '빅풋', 그리고 그 유명한 '로스웰 우주인 해부사건'...
나는 사실, 매달 사 보던 소년중앙에서 그런 기사를 찾아보는 걸 즐겼다. 프로야구 선수 이만수 아저씨와 김봉연 아저씨의 홈런왕 라이벌 대담도, MBC 드라마 '간난이'에 남매로 출연해 인기를 모았던 아역 배우 김수양, 김수용 인터뷰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상무의 '달려라 꼴찌',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로봇 찌빠'같은 만화는 재미있었지만 스토리의 틀에 갇혀 답답했고, 과학기사는 이미 백과사전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래서 갓 구입한 소년중앙을 사서 손에 들면 페이지를 훌훌 넘겨 파랗거나 빨간 색 삽화와 사진으로 가득한, 단 두 세 페이지를 처음으로 찾았다. 이번 호에는 어떤 끔찍하고 놀라운 기사들이 있을까, 기대하면서.
그 기사 가운데 아직도 생생한 것이 바로 '볼드와'에 관한 기사다. 기억은 선명하지만 위에 열거한 다른 기사들보다 양이 많거나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외계인 특집으로 꾸며진 기사 가운데 사진 한 장과 설명 한 줄, 이게 전부였다. 사진에는 정장을 입은 한 남자의 상반신이 찍혀 있었다. 기자회견 중에 찍은 듯 주변에는 카메라기자의 손이나 카메라 일부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터미네이터 2에 T-1000으로 나온 로버트 패트릭의 이미지와 흡사한 사진속의 남자는 아주 말끔하고 날카롭다. 그리고 카메라 렌즈의 이쪽을 살짝 굳은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다. 사진의 캡션은 이렇게 돼 있다.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볼드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사실 볼드와를 다룬 소년중앙의 기사는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간, 머리속 한참 구석에 밀려나 있던 기억 속 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떤 이유로 갑자기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뒤에 무슨 계시처럼 떠오른 뒤에는,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다른 기사들은 빛을 잃고 사라져 갔고 그 자리를 야금야금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 기사가 왜 지금도 기억날까. 트럼프 카드보다도 작은 사진과 한 줄의 설명. 특집 기사 내용은 다 잊었는데, 유독 그 기사만 사진처럼 뇌리에 박혀 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정말 외계인이든, 아니면 -기사의 뉘앙스대로-사기꾼이든 상관없이 나는 볼드와가 누군지 궁금했다.' 볼드와라는 이름을 가진 사진 속의 남자가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무엇이고, 그 주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기자들의 취재를 받을 정도로까지 알려졌으며,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가 궁금했고, 그 내용이 지역 타블로이드 신문을 넘어 (둥실둥실 날아가) 어쩌다가 일본 소년잡지의 한 구석을 장식했으며 그 기사를 본 소년중앙 편집자나 기자가 어떤 경위로 그 기사를 소년중앙에까지 내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사진이 찍히던 순간 이후에 볼드와는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죽었다면 죽을 때는 어떤 상태였는지가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그가 외계인이라는 주장을 펴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도 알았으면 좋겠다. 살아 있다면 만나고 싶기까지 했다.
볼드와를 역추적하기 위해서는 '볼드와'라는 이름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일단 내 기억에 있는 '볼드와'라는 단어가 소년중앙에 실려 있는 그대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 첫 단계가 될 터인데,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이마저도 확인이 쉽지 않다. 내가 소년중앙을 본 건 대략 1982년부터 1987년 사이 6년 동안이다. 거의 매 달 빠지지 않고 봤으니 권수로는 72권인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10여 권. 물론 내가 찾는 그 기사는 없었다. 네이버의 '클로버문고의 추억'이라는 카페에 가면 당시 소년잡지들에 대한 정보가 가끔 나온다. 디지털 복간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이 카페에서 쓸만한 정보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긴 한데, 카페가 소년잡지 중심이라기보다는 클로버문고 등 단행본 중심이어서 무작정 기대하기는 어렵다. 헌 책방이나 헌 책을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최근 7,80년대 소년잡지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관심이 생기면 유통이 있을테니 잘만 하면 80년대 소년중앙을 다 갖고 있는 수집가나 도서관이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볼드와'를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다른 루트의 추적도 계속해야 한다. 소년중앙 기사의 원문, 즉 소년중앙이 무단전재한 일본 기사를 확인하는 일이다. '볼드와'를 일본어로 옮기면 'ボルドワ(보루도와)' 혹은 ,'ボ-ルドワ(보-루도와)' 둘 가운데 하나다. 오타쿠 많은 일본이니까 관련된 사이트나 포스팅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야후 재팬에서 검색한 결과는 실망적이다. 검색에 걸리지 않는 개인연구자의 웹 페이지나 블로그를 찾아 나가는, 실로 방대한 작업에 덥석 손을 대기가 현재로서는 두렵다. 일본 소년잡지 기사에 대한 연구나 분석도 있을 수 있으니 계속 구글링을 해야 할 것 같다.
ボルドワ, 혹은 ボ-ルドワ 가 나오게 된 원문을 '상상'해본다. 원문은 어떤 알파벳으로 구성돼 있을까. 추리 가능한 조합은 일단 Boldwa, 혹은 Baldwa. 그러나 이름이라는 고유명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발음으로 봤을 때 헝가리나 체코, 유고 쪽의 성씨일 가능성이 높고, 표기도 영어 알파벳의 Boldwa가 아닐 수 있다. 볼드와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동유럽 이민자의 자손일 것이다. 헝가리에는 Boldva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경우 발음은 '볼드와'가 아니라 '볼드봐'에 가깝다. 헝가리어는 w, x, y를 표기에 사용하지 않고, W의 경우 발음은 프랑스어의 v에 가깝다. 갈수록 미로에 빠져드는 느낌.
'볼드와'를 찾는 일을 계속하면 할 수록 하루키의 초기 소설 가운데 [1973년의 핀볼]이 오버랩된다. 주인공은 어느날 핀볼 머신인 '스리 플리퍼의 스페이스쉽'을 찾기 시작한다. 매니악한 핀볼 연구자들을 만나 닭똥 냄새 가득한 창고에 어느 수집가가 보관하고 있던 수 많은 핀볼 머신 가운데 플리퍼가 세 개인 스페이스쉽을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다만 소설에서 핀볼 머신은 그 자체가 주인공의 추억이며, 기억인 동시에 혼란한 시절을 함께 한 주인공 '자아'와도 동일시된다. 바로 이 점이 나와 볼드와 사이에는 결락된 부분이며, 내가 갈 수 있는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러다가 어느 날 어딘가의 낡은 서점에서 펼쳐든 소년중앙에서, 볼드와의 사진을 발견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될까. 그 시간을 맞는다는 생각이 백 퍼센트 기대만은 아닌 것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인가. 나 외에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확인할 수도 없는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애써 혼자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 작업은, 그래서 더욱 외롭고 고되다. (2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