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소년잡지의 추억
언젠가 홍대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볼드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볼드와는 80년대의 소년중앙 외계인 특집에 실린 젊은 남자의 이름이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볼드와의 사진에는 단 한 줄의 설명만 붙어 있었다.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볼드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몇 달이 지난 뒤 나는 그 술자리 이후 계속 머리 한 쪽을 잡아끌던 볼드와를 찾기 위해 금쪽같은 휴가 중 하루를 할애해 국립중앙도서관의 장서 가운데 듬성듬성 남은 소년중앙 여러 달 치를 뒤져봤지만 마땅한 단서를 얻을 수 없었고, 중앙일보 데이터베이스에도 지인을 통해 접근을 시도했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기도 했다. 또 이 즈음, 이른바 '공개수배' 목적의 글을 블로그와 당시 활동하던 몇몇 커뮤니티에 올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한동안 '볼드와 찾기'에 진전은 없었다. (뭐 죽자고 달려들었으면 결과는 달랐겠지만, 먹고 사는데 바빠서...) 그러다가 지난 해 초, 네이버가 '옛날 신문' 검색을 시작하면서 문득 기사 수요가 없는 한가한 오후에
'스스로/주장/외계인'이라는 단어를 검색어에 넣었다가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이 실감나던 80년대에는 여러 번 초과학이니 UFO니, 외계인이니 하는 주제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강연회나 연구회 같은 게 열리기도 했는데, 그런 강연회를 다룬 짤막한 기사 가운데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외국인(당시 정서로는 외계인이나 외국인이나...)이 초빙돼 강연을 펼쳤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자칭) 외계인은 '클로드 보리롱'이라는 프랑스 사람이었고, 그는 나중에 그 이름 대신 자신을 '라엘'이라고 부르며 신흥종교에 가까운 포교활동을 전세계적으로 확장한다. 바로 '라엘리안 무브먼트'다. 그래서 나는, '보리롱'이 혀 잘 안돌아가는 일본인 소년잡지 기자의 기사를 통해 '볼드와'로 변질된 뒤 우리나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전인수'격으로 볼드와를 막상 찾고 나니 허탈감이 찾아왔다. '뭐야, 이렇게 유명한 거였어?'하는 기분, 100% 똑같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린 시절 옆집의 (바보같고) 친절한 아저씨가 어느날 (바보같으면 안되는) 대통령이 된 걸 보는 뭐 그런 허망함, 그런 거였다. 그렇게 '볼드와'를 찾는 작업(..이라기엔 좀 부끄러운)은 스스로 막을 내린 상태였다.
훗날 '라엘'로 이름을 바꾼 클로드 보리롱은 젊은 시절 클로드 셀러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사진은 이렇다. 내가 기억하는 '볼드와'의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게 아니란 말야!'라고 항변할 만한 다른 자료를 찾을 길이 없어 막막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결론이 난 것도, 안난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던 '볼드와 찾기'는 갑자기 대반전을 만나게 되는데, 앞서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한 네이버 '클로버문고의 향수' 카페에 푸념하듯 올린 재탕글에
눈이 번쩍 뜨이는 댓글이 달린 것이었다. (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