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여름으로 돌입한 도쿄에서
지난 주 홋카이도 여행은 대체로 즐거웠다. 중부 도카치 평야의 중심도시 오비히로를 기점으로 후라노와 비에이를 왕복하고, 오비히로 근처를 돌아다녔다. 아내와 내가 도쿄에서의 한 달 반 생활에 조금 지쳐가고 있었다는 걸, 그 동네에 가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다시 신용카드와 렌트카로 무장한 여행객이 되어, 중국인 관광객의 무리에 섞였다가 떨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다소 쌀쌀한 동네를 쫄랑쫄랑 돌아다녔다. 9년 6개월만에 후라노와 비에이를 찾아가 거기 있던 것들이 대부분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고, 여름에는 어떤 모습인지를 눈에 담았다. 닷새 동안 두툼한 고기로 토핑된 부타동과 징기스칸을 고이 씹어서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와 함께 넘겼고, 또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청주와 소주를 많이도 마셨다. 오비히로 시내의 넓디넓은 공원을 산책하다가, 구름을 가득 머금은 하늘이 더 이상은 못참겠다는 듯 비를 뿌리기 시작하면,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멀쩡한 표정으로 공원 안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시노야마 키신의 사진전을 관람했다.
그리고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미룬 꿈을 몰아서 꾼다. 최근의 꿈은 여행을 다녀 오기 전보다 훨씬 이미지가 많아졌고, 그 이미지들은 전보다 오래 기억된다. 대단한 이미지는 아니다.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받아, 그 속에 담긴 물의 가장자리가 마치 테를 두른 듯 밝게 빛난다든가, 서로 알 리가 없는 두 지인이 내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든가 하는 이미지다. 배경은 에어브러시로 대충 뭉개 놓은 듯 희미하고, 내 시선이 닿는 곳에서 잠시 명확해지다가는 이내 원래의 모호한 상태로 돌아간다. 꿈 속에서 나는 대체로 세상의 사리에 맞게 행동하지만, 나를 둘러싼 주변은 왠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있어야 할 물건이 제자리에 없고, 반갑지 않은 사람이 나와 그리 즐겁지 않은 말을 하고는 사라진다. 불쾌하지는 않으나, 활짝 웃을 수도 없다.
일어나면 TV를 켜서 맛집 정보와 뉴스가 기묘하게 섞인 프로그램을 본다. 내가 도쿄에 도착했을 무렵 팬을 자처하는 사이코패스 남자에게 수십 차례 칼로 찔려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던 아이돌 지망생 여대생은 얼마전 의식을 되찾았다는 보도 이후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지난 주에는 도쿄 한 복판, 고급 주택가 근처의 공원 연못에서 토막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아직 피살자의 신원은 물론, 정확한 사건 경위도 밝혀지지 않았다. 한 여배우의 임신이 안정기가 되기도 전에 특종이라며 보도되어 과연 그렇게 하는 게 맞느냐는 비난이 잠시 일었고, 2주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는 뿌리깊은 무관심 속에 선거운동이 진행중이다.
글씨를 잘 쓰고 싶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아름다운'이 아니라 '명확한' 글씨와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들른 긴자 이토야에서, 그림을 좀 그려보겠다고 줄 없는 노트를 한 권 샀는데,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희미한 연필선으로 뭉개는 대신, 가는 펜으로, 명징한 선으로 무언가를 그려보고 싶다. 그게 풍경이든, 눈 앞에 놓인 사물이든. 그저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
오늘은 다섯 달 치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츠타야의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자판기에서 담배를 살 수 있는 IC 카드 'TASPO'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신청하고, 일본에 와서 두 번째인 이발을 했다. 거의 열흘 만에 대학 연구실로 돌아와 쌓인 보도자료 메일을 왕창 지우고, 지난 주에 들어온 급여를 확인했다. 정상적으로 살아 남는 것을 제외하면 확실히 해야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이 시간이 또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 무리를 지어 흘러간다. (20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