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묻혀서도 잊혀서도 안 될 시민들의 이야기
아직 집과 학교가 세상의 거의 전부였던 시절, 내게 있어 사회란 곧 어른들의 세계였다. 엄마 손을 붙잡고 가본 적은 있더라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인 어른들의 세계. 저금을 하려면 어디를 가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는 어디로 가면 되는지. 책에서도 읽어봤고 TV로도 봐왔으니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그 일상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온 세상을 무너뜨릴 혼란과 불안에 삼켜지고 또 휩싸였다. 무엇을 해야 하지? 어디에 있으면 될까? 여기에 앉아도 되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은행도, 병원도, 구청과 우체국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는 마치 전장에 갇힌 아이인 양 막연한 두려움을 삼켜야 했다.
이전에도 몇 차례 드러내 온 이야기로, 나는 이제껏 타인에게 쉽사리 공감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혹여나 내 마음이 배신당할까 두려워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그 말이 듣기가 무서워서. 어차피 완벽한 공감은 불가능하고 결국은 어림짐작에 불과하다며, 공감이라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밀어내만 왔다. 그동안 고수해 온 나의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했다. 저 사람이 겪은 일을 나는 겪지 못했는데, 어찌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가 있겠냐고.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나의 삶과 얼마나 큰 관련이 있겠냐고. 꼭 같은 경험을 거쳐와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줄곧 타인의 아픔에 무척이나 무심했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 명명했고, 누군가는 이를 보며 ‘탈나치화’에 ‘실지회복’이라 외쳐댔다. 그래, 어쩌면 그 누군가의 말처럼 이는 전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라니, 애초에 제대로 된 싸움이 성립될 체급 차이도 아니지 않나. 그리고 무엇보다 한순간에 일상을 잃은 이들에게 있어 지난 몇 년은 분명 ‘전쟁’이란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재난이었을 테다.
무엇을 숨기랴. 크름반도 합병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어 돈바스 전쟁을 거쳐 지금의 상황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에 대한 나의 시각은 언제나 약육강식 일변도였다. 약자는 내놓고, 강자는 취하고. 물론 이러한 원시적 힘의 논리가 옳다는 이야기는 결단코 아니다. 필시 그것이 위험하고 잘못되었기에, 사회는 계속 힘을 경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일 테니까. 총 대신에 손을 잡고 눈을 맞춰 대화하며,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현재에 이른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어느샌가 우리는 또다시 승자독식의 투기장으로 되돌아와 버렸다. 오히려 기존의 무력에 더해 경제력, 문화력, 정치력 등 힘의 척도가 분화되고 늘어나며,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는 위계적 구조가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혹시 약육강식이란 인간 군상의 어쩔 수 없는 진상인 걸까. 제아무리 바로잡으려 발버둥을 치더라도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인 걸까.
어쩔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면, 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은 걸까. 어떠한 시선과 어떠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걸까. 혼란 속에서 떠올린 어렴풋한 조언은 바로, 피할 수 없다면 한번 즐겨 보라는 말이었다. 그래, 내가 즐기면 되는 거지. 어차피 먼 나라의 이야기인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그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다시금 몇 배의 사람들이 슬퍼한다 할지라도, 내게는 그 모두가 결국 TV쇼나 다름없었다. 그저 안전한 일상의 품에 누워 잠깐의 뉴스로만 세상을 관망하던 것이 그 시절의 어리석은 나였으니까.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겪어보지 못했으면서, 누군가를 잃는 슬픔 역시 느껴보지 못했으면서. 잘 알지도 못한 채 입만 살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지금은 너무나 부끄럽고 고약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비뚤어진 주관을 가졌던 나에게 아무 말 없이 현실을 보여주었다. 계엄령 때문인지 도심에는 침묵이 내려앉았고, 마치 죽어가는 도시가 통곡하듯 곳곳의 폭격음만이 폐허가 된 골목들을 채워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전쟁은 다 그런 것이라며 무어라도 알고 있는 양 실컷 거드름을 피워댔다. 그런데 세상에. 막연히 전쟁이란 오로지 군인들만의 세계라고 여겨왔거늘. 무너진 건물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모두 보호장구조차 갖추지 못한 일상 그대로의 민간인들이었다.
저들 모두 바로 며칠 전까지, 어쩌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식탁에 모이고. 그런 평범한 삶이 내일도 이어지리라 의심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일상이었던 거리를 바라보며 저들은 어떤 감정에 빠져갔을까. 전쟁터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과연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영문 모를 불안감에 몸서리쳤을지 모르는데, 나는 자신의 두려움만이 제일이라 으스대며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폄훼해 왔더라.
카메라에 담긴 ‘마리우폴 포위전’의 이면은 심리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무척이나 아프고 답답했다. 외곽에서 전투를 이어가던 군인들 대신, 아직 일상이 묻어있는 민간인들을 비추었기 때문일까. 국적도 인종도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아픔의 크기를 감히 견줄 수는 없겠지만, 저들이 잃은 것을 나 역시도 작게나마 잃어보았기에. 그들을 덮쳤을 상실감과 허탈함이 내게도 전해져 와 온몸이 다 불편했다.
그러나 영상 속 감독의 말처럼, 이 참혹한 현실은 우리에게 불편하게 느껴져야 했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의 비인간성을 알리기 위해, TV쇼를 보듯 흘려 넘기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아픔으로 이해하기 위해.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 버린 마리우폴의 시민들은 필시 나보다 더 괴롭고 또 갑갑했을 테니까. 그제는 전투기의 굉음이 내려왔고, 어제는 폭격의 연기가 올랐으며, 오늘은 군인들의 총소리가 아파트 사이사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아득한 미래의 일로 여기며 그 공포를 잊은 채 살아가지만, 마리우폴에 갇힌 이들은 매일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죽음을 실감하며 가시적인 공포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세상에. 이제껏 나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대체 얼마나 가볍게 내뱉어 온 걸까.
마리우폴에서의 전투는 내가 제대로 인지하고 본 첫 번째 전쟁이었다. 스크린을 통해서나마 진짜 전쟁을 목도하게 되자, 마치 입속에 무거운 자물쇠가 채워진 듯 더 이상 경솔한 생각들을 던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발발로부터 2년도 더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된 점, 이제껏 생명의 무게와 타인의 감정을 그토록 가볍게 여겨온 점이 그저 무안했고 죄송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하무인으로 생각하던 나 자신을 대체 무엇이 공감으로까지 이끌어준 걸까?
참혹한 역사를 처음 마주한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이 작품이 재현의 윤리를 어겨가며까지 자극적 호소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고 바뀐 것은 역시 저들에게서 나와의 공통분모를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남 일 같지가 않아서. 그래서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더 아픔을 덜어주고 싶었다. 일상을 잃은 허탈함이 얼마나 무거운지,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무력함이 어찌나 답답한지. 그 누구 못지않게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비록 한 줌의 마음일지라도 그들에게 보태주고 싶었다.
분명 이 작품, <마리우폴에서의 20일>에는 단순한 기록물 이상의 힘이 담겨 있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먼 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적어도 국내에서는 여러 이슈들에 밀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이야기가 이전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작품 안팎으로 다양한 장벽들이 늘어서 있지만, 부디 그 모든 벽을 뛰어넘어 이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포착되기를, 또 더 많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