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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ul 02. 2019

영웅으로서의 성장,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다

*본 글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1년을 달려온 MCU의 제1막,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하는 작품이자, 마블로 돌아온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드디어 개봉했다. MCU의 스파이더맨에게 있어 아이언맨은 스승을 넘어 부모와 같은 존재였기에, 토니의 희생으로 마무리된 <엔드게임> 이후 이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그 마음을 마블 측에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영화는 그리 길지 않은 간격으로 곧이어 개봉되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개봉하기 전, 우리들은 이 영화가 몇몇 부분들에 대해 설명이나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바랐다. 많은 궁금증들이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만 뽑아 보자면, 우선은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전 생명체의 절반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블립’ 현상이 사회에 어떤 여파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MCU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에 관하여 영화 속에서 다뤄주기를 기대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두 의문에 대해서는 영화가 대략적으로나마 답을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재치 있게 설명해주니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고, 이번 글에서는 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전까지, 다시 말해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의 영화들을 살펴보자. 올해 3월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인 케빈 파이기에 의해, 2008년의 <아이언맨>부터 2019년의 <엔드게임>과 <파 프롬 홈>까지 총 23편의 영화들에 ‘인피니티 사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피니티 스톤을 중심으로 각각의 영웅들이 모여 타노스에 맞서는 이 서사는 <엔드게임>에서 타노스를 쓰러트리며 단락을 맺었다. 이번 <파 프롬 홈>은 일종의 에필로그와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인피니티 사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내용적으로 보자면 ‘타노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본디 만날 일이 없는 각각의 프랜차이즈를 지닌 히어로들이 타노스를 무찌른다는 하나의 목적 아래에 뭉쳤고 힘을 합쳐 싸웠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의 목표는 타노스가 되었을까? 마블이 그를 최종 보스의 자리에 앉힌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인피니티 사가가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이야기해왔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글의 첫 줄에서 언급했듯이 인피니티 사가는 MCU의 제1막이다. 스크린을 통해 대중과 캐릭터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시기였고, 그렇기에 대중에게 ‘히어로’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우리는 직관적으로 답을 알고 있다. ‘슈퍼맨’이라는 히어로의 대명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블이 추구한 영웅상은 이미 완성된 완벽 초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관객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영웅을 추구했다. 실수하고 후회하며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다.


인피니티 사가는 캐릭터들이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캐릭터가 겪는 사익과 공익 사이의 갈등, 힘(슈트)의 유무에 따른 정체성 갈등. 이러한 고민들을 일련의 영화 속에 담아 히어로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구축해나갔다.



다시 타노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절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우리 관점에서야 그는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온 우주를 대상으로 학살을 벌인 학살자이지만, 그 딴에는 자원 고갈로 인한 멸종을 막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히어로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학살자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악에 몸을 맡긴 게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그를 비롯한 마블의 빌런들에게는 이유가 있다. 신념이 있다. 때문에 평면적인 악당과 차별화되어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거나 동정을 받기도 했다. 마블의 싸움은 선과 악을 넘어선 신념과 신념의 대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 속에서 우리는 누가 히어로이며 누가 빌런인지에 대해 비교하고 판단을 내려왔으며, 마찬가지로 영화 속 캐릭터들도 자신이 히어로인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영화 안팎에서 이어지는 히어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바로 인피니티 사가가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앞에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파 프롬 홈>의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퀜틴 벡, 미스테리오는 빌런이었다. 그것도 그냥 빌런이 아니라 홀로그램과 각본으로 만들어진 ‘가상’ 빌런이었다. 토니 스타크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미스테리오라는 가상의 히어로와 그가 무찌를 가상의 빌런들을 만들었으며, 드론과 홀로그램 기술을 융합하여 가히 리얼리티 스톤의 현실 조작에 맞먹는 환영을 만들어냈다. 베를린 전투에서 보여준 환영 기술은 <인셉션>이나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도저히 인간의 기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퀜틴 벡은 그 완벽한 능력을 이용해 스파이더맨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대중을 속여 자신을 차기 아이언맨으로 여기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여기에는 대중의 심리 또한 강하게 작용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라는 두 거대한 히어로가 사라진 세상에 방황하는 대중의 믿음을 끌어안아줄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캡틴 마블과 토르는 우주로 나갔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헐크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솔로 무비가 없는 다른 히어로들은 지금까지 거의 사이드킥처럼 여겨졌기에 곧바로 두 리더의 자리를 대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은 소박하고 친절한 우리의 이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수 있다면 누구든지, 신뢰받는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퀜틴 벡은 이를 이용했다.



그의 정체를 알아낸 스파이더맨에 의해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동료들은 건재하며 홀로그램 기술 또한 재등장을 예고했다. 이에 더해 쿠키 영상에서 보여준 유려한 편집 기술까지 있으니 그들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기술이 이후의 MCU에 핵심적인 요소가 되리라.


이제 그들의 새로운 서사에는 그에 맞춰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히어로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 영화 속 지구의 그들도 모두 알고 있다. <강철의 심장, 아이언맨>이라는 극중극까지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스파이더맨은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겨왔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도. 이는 적극적으로 가족의 지원을 받는 아이언맨이나 자녀가 후계자로 거론되기까지 하는 앤트맨, 호크아이와 대비되는 스파이더맨만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번 쿠키 영상으로 인해 온 세상에 그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영화 속에서 피터는 친구들과 여행 온 ‘학생 피터 파커’와 닉 퓨리의 임무를 받는 ‘히어로 스파이더맨’ 사이에서 역할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알려지며 이제 그 둘은 하나가 되었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는 진정으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가 된 것이다.



진정한 히어로가 되었으니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되어 끝나는 걸까? 그렇지 않다. 피터의 목표는 히어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친절한 이웃으로서 악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무엇이 다르냐고? 쉽게 말해, 우리의 꿈은 취직하여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지, 단순히 어딘가에 입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MCU는 마블 캐릭터들의 인생과도 같다. 10년이 넘게 이어져온 MCU는 끝나지 않았다. 히어로들의 삶도,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삶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인피니티 사가 속에서 히어로로 각성한 피터 파커는 앞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히어로가 된 이후,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싸우고 고뇌할 것이다. 앞으로의 마블은 이러한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을까.


두 번째 쿠키 영상에서는 반가운 얼굴과 만날 수 있었다. <캡틴 마블>에 등장했던 스크럴 종족이 돌아온 것이다. 변신과 위장이 특기인 이들이 재등장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의 빌런들이 이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환영을 다룰 것이라는 점 등을 보았을 때, 이제 마블의 히어로들은 거울을 보듯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영화에서 미스테리오가 피터에게 보여준 환영처럼 히어로인 자신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적 갈등이 히어로로서의 자신과 그렇지 않은 자신 사이에서 일어났다면, 이후의 이야기에서는 히어로가 된 후의 자신과의 대립을 통해 정신적으로 또 한 단계 더 위로 성장하지 않을까. '영웅으로의 성장'을 마친 이들은 이제 '영웅으로서의 성장'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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