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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May 26. 2019

신화를 만든다는 것, <어벤져스: 엔드게임>

그들과 함께 기억될 우리 모두의 11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하고 한 달이 지났다.


언제부터였을까, <엔드게임>을 기다리게 되었던 건. 제목 미정의 <어벤져스> 시리즈 3편과 4편의 제작이 발표되기 전부터, 어쩌면 <어벤져스>를 본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클라이맥스를 기다려왔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윤곽조차 알 수 없었던 그때부터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들이 모두 모일 순간을 꿈꿔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막연한 기다림은 MCU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뚜렷해져 작년 <인피니티 워>의 엔딩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대체 앞으로 1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1년이 지나가기는 할지 등등 달력을 넘기며 남은 일수를 세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기다려왔을, 아이언맨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엔드게임>이 개봉하지 않기를 바랐다.



배우들의 계약 문제나 누군가의 장례식 장면을 촬영했다는 소문 등, 이번 영화를 통해 어느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건 이미 팬들에게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과연 내가 그들을 보내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직 보내줄 수 없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믿고, 잊고, 루머라 치부하며 1년을 보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절대 토니 스타크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앞서 말했듯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출연료와 히어로의 세대교체 등을 생각하면 언젠가 그 역시 떠나게 되겠지만, 적어도 <스파이더맨>이 계속되는 동안은 히어로는 아닐지언정 피터의 멘토로서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 보게 된 <엔드게임>의 메인 예고편은 나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아이언맨’이 되어 그가 걸어온 길과 내가 걸어온 길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엔드게임>에서 그 모든 길이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내 마음에 너무나도 큰 구멍이 생기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저 이대로, 기다려지는 ‘다음’이 있는 지금 이대로가 계속되기를 바랐다. 토니가 떠나고 나면 대체 얼마나 아픈 상처가 남을지, 내게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걱정과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찢어졌다. 마지막 대전투를 보며 그 거대한 스케일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와중에도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흘러나오는 흐느낌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첫날 심야 상영으로 영화를 본 뒤 첫 차를 타고 돌아가며, 아무도 없는 지하철 객실에서 홀로 조용히 울었다.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일까? 좋아하는 배우가 떠나갈 것 같아서? 좋아하는 히어로가 사라질 것 같아서? 좋아하는 영화가 끝날 것만 같아서? 모르겠다. 그저 그들이 내 가족인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이었던 2008년부터 대학생이 된 2019년까지, 우리는 11년을 함께 달려왔다. 그들은 히어로를 넘고, 배우를 넘어, 어느샌가 내게 삶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이 벌써부터 그리워서, <엔드게임>의 그들이 너무 빛나 보여서, 그리고 함께 해주어 고마워서, 그렇게 며칠, 몇 주를 보냈다.



말했듯이 나는 <엔드게임>을 보고 나면 분명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러나 엔드게임이 남긴 건 그저 공허할 뿐인 공백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지만, 이 구멍은 나의 과거를 비추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오직 앞만을 보며 살아왔다. 다음 영화는 언제 나올지라는 사소한 것부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까지. 행복했던 추억은 접어놓고 미래에 대한 걱정만을 안은 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엔드게임> 이후, 비로소 나는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마블과 함께 하며 겪어온 11년 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이사를 가서 헤어졌던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은 건 <어벤져스>(2012)가 개봉했을 때였다. 같이 영화를 보며 앞으로 펼쳐질 MCU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는 나의 음악 취향을 올드팝으로 바꾸어놓았고,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은 개봉일에 영화를 보고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웃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일화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로 나는 브런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블은 단지 영화를 만들어 개봉해왔던 게 아니다. 그들은 내게 추억을 만들어주었고, 내 마음속에 한 권의 앨범을 만들어주었다. 영화가 흥행을 하든, 못 하든. 마블은 우리들 마음속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채워왔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고, 사람을 만난 날들과 영화를 기다리며 지내온 날들이 모두 추억이 되어 앨범에 담겼다.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아버렸으니까. 앞으로를 살아갈 또 다른 소중함을 얻었으니까.



마블의 기록적인 흥행 신화를 흔히 ‘마블 신화’라 부른다. 그들은 이 신화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훌륭한 영화만으로는 신화가 될 수 없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들과 상호작용해야 비로소 신화가 될 수 있으리라. 마블은 11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추억을 담을 사진집을 선물했고, 그 앨범들이야말로 ‘마블 신화’의 본질이다. 이 신화를 통해 스크린 속에서 활약한 히어로들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11년도 그들과 함께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그 신화가 계속되기를,

우리가 계속 함께할 수 있기를.

고마워요, 마블.

이제 편히 쉬어요, 토니.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내용은 배제하고, 이번에는 제가 느낀 감정들을 적어봤습니다. 내용이나 연출에 관련해서 인상 깊었던 부분과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곧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여담으로 목표했던 CGV 용산아이파크몰 상영 포맷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전부 명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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