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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Nov 06. 2021

영웅 서사를 뒤집다, <이터널스>

히어로의 본질을 되새기는 가장 마블다운 영화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블의 세계관을 더욱 넓혀줄 영화, 앞으로의 주무대가 될 우주로의 문을 또 한 번 활짝 열어줄 영화. <이터널스>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냈다. 화려한 배우진에 훌륭한 감독, 그리고 역대급이라 불릴 만한 거대한 스케일. 수많은 개봉 예정작들 중 국내외로 가장 뜨거웠던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캐릭터가 문제였던 걸까. 혹은 액션보다 드라마에 치중된 연출이 어색했던 걸까. MCU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을 <이터널스>에는 어느새 마블 같지 않은 마블 영화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배경으로든 입장으로든, 이터널스가 지금까지의 마블 히어로들과 비교해 상당히 동떨어져 있던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스파이더맨을 필두로 한 이웃 같은 영웅, 초창기 아이언맨과 같은 소시민적 영웅. 실수하고 실패하던 그들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조금씩 진정한 영웅이 되어갔고, 그들이 풍기는 사람 냄새에 우리는 10년이 넘도록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터널스는 이미 처음부터 숭고했고 완전했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어려움 없이 괴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냈고, 문명의 은총을 내려줌으로써 그들이 성장하게끔 이끌었다. 기원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그들은 단순한 영웅을 넘어 신의 사도와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아왔다. 때문에 그들은 다분히 인간미로 가득하던 MCU의 히어로들보다는 절대선의 상징인 슈퍼맨에 더 가까워 보였고,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이터널스>가 마블 같지 않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초반, 이터널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메시아의 강림과 같았다. 감독의 특기를 살린 웅장한 풍광과 인류 문명의 전경들 속에서 이터널스의 일원들은 한없이 경외로웠으며 또 이질적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강력했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명령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기에. 그들의 얼굴은 따스함 대신 사명감과 충성심으로 굳어있었고, 그 마음의 차이가 그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차가운 신과 같았던 그들은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마음을 키워갔다. 사람들과 함께 밭을 갈구고 음식을 만들며, 함께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그들은 같이 웃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완성된 영웅 역할을 수행해온 그들이, 어느샌가 자신의 의지로 인류에게서 빛을 찾고 있었다. 영화의 갈등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꿈을 꾸게 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목표에 따라 헤어지고 대립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 그들의 성장이리라. 불멸의 존재로서 언제나 변치 않던 그들이 그제야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니까.



영화에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건 이터널스만이 아니다. 그들과 싸우는 괴물, 데비안츠 역시 힘을 흡수할수록 점점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작중 이터널스와 데비안츠가 본래 같은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만큼 그 둘은 서로의 정반대에 있으면서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양쪽 모두 인간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성장했던 걸까. 그것은 분명 그 두 종족이 각각 인간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이잭(셀마 헤이엑)과 길가메시(마동석)를 흡수한 데비안츠의 수장 크로(빌 스카스가드)는 분노에 휩싸인 채, 자신들은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살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었을 뿐이고, 그렇게 빼앗은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 최상위 포식자에 군림했을 뿐이었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해야만 했다. 데비안츠의 논리와 습성은 지독히도 인간과 같았으니까. 영화 초반 흘러간 인류의 역사 속 수많은 전쟁과 학살들은 데비안츠의 공격과 다를 게 없었다. 복수심과 이기심, 나만을 우선하는 강력한 생존 욕구.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암부가 바로 데비안츠, 괴물이었다.



반면에 이터널스, 그중에서도 세르시(젬마 찬)와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중심으로 한 자주파 이터널들은 우리들의 밝은 면을 상징했다. 그들은 상처 입고 좌절하면서도 빛을 찾아내었고,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집에서 날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숨이 막힐 정도로 힘겨운 싸움과 터무니없는 도전 앞에서도 다시 또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마치 매일을 버텨내는 우리네 가족들처럼. 영화의 후반, 진정으로 다른 이를 위해 달려나간 그들은 비로소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영웅이 되어있었다.


사람의 삶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들 한다. 분명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터널스와 데비안츠가 모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 한 쪽이 더 자라나 우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겠지. 만일 우리가 이기심만으로 성장한다면, 그 끝은 인간의 모습일지언정 결코 괴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장과 변화를 거부한 채 조그마한 틀에 스스로를 가두려고만 한다면, 언젠가 이카리스(리차드 매든)처럼 우리의 지난날들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터널스>는 인간다움에 관한 영화다. 기존의 영웅 서사를 뒤집어 '영웅이 되는 인간' 대신 '인간이 되는 영웅'을 비춤으로써, 히어로가 갖추어야 할 본질을 굳게 가다듬었다. 완전한 듯 보였던 영웅들이 한 걸음씩 성숙해져가는 여정, 탐욕에 눈을 감아버린 괴물이 점점 더 추락해가는 과정. 영화는 선과 악의 주체를 정해놓는 대신 그들의 출발점을 갖게 하여, 관객들이 영웅의 기원을 되새기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게끔 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터널스>는 마블 같지 않은 영화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길기만 한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극장을 나와 그들의 선택을 돌이켜본다면,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 인간미 넘치는 MCU의 히어로들임을 느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그렇게 그들과 우리를, 또 그들 각각을 번갈아 바라본다면. 어느 순간 당신에게도 이 영화가 가장 마블다운 영화로 보이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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